이판사판 개판 "사법체계 붕괴"
‘이판(理判)’은 참선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을, ‘사판(事判)’은 절의 살림을 맡은 스님을 뜻한다. 본래는 수행과 질서의 조화를 상징했으나, 오늘날에는 “될 대로 되라”는 뜻의 속어로 전락했다. 제 자리를 잃고 역할이 뒤섞이면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이판이 참선하지 않고, 사판이 재물을 탐하면 절은 곧 난장판이 된다. 그 절간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유흥을 즐긴다면, 그곳은 더 이상 수행의 공간이 아니라 ‘이판사판 공사판 개판’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법 현실이 꼭 그렇다. 법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서, 어떤 재판은 수년째 열리지 않고, 어떤 사건은 정치적 무게에 따라 영장이 기각된다. 죄가 있어도 힘이 있으면 풀려나고, 힘없는 사람은 단 한 번의 실수로 감옥에 간다. 법의 잣대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범죄 소명이 충분함에도 현역 의원이나 당 대표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가 하면, 공동 피고인에게 한쪽은 벌금형, 다른 한쪽은 무죄를 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제1심의 유죄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사법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정권과 가까운 인물에게는 유난히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고, 반대편 인사에게는 유례없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대법원 판결조차 정치논리로 해석되는 현실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논하기 어렵다. 법이 흔들리면 정의가 무너지고, 정의가 무너지면 나라는 길을 잃는다.
국민의 시선은 이제 재판 결과보다 판사의 이름으로 향한다. 어느 재판부에 배당되었는지가 결과를 예측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것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의 모습인가.
법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그 권한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사법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법복은 권력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국민의 마지막 희망이어야 한다.
이판이 사판이 되고, 사판이 이판이 되면 결국 공사판이 되고, 그 끝은 난장판이다. 사법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의 또한 회복될 수 없다.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세워야지, 권력의 이름으로 판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