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人文 칼럼]

이성의 잠(sleep), 한국 사회의 악몽

작성일 : 2025-11-14 15:59 수정일 : 2025-11-14 17:54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고무열 교수
 

이성의 잠(sleep), 한국 사회의 악몽

 

. 이성이 멈출 때 생기는 괴물

 

칸트는 경고했다. ‘이성은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망상으로 빠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생각을 멈추는 데 놀라울 만큼 재능이 있다. 왕이 신의 이름으로 폭정을 휘둘렀고, 오늘날의 대중은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신권이 무너진 자리에 여론 권력이 서고, 신의 목소리를 대신하던 설교는 이제 SNS의 트렌드가 대신한다. 우리는 생각의 왕좌를 내주고, 감정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 그 결과, 이성은 잠들고 사회는 그 잠 속에서 괴물을 길러냈다.

 

. 생각하지 않는 국민,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간

 

칸트는 계몽의 핵심을 사유의 용기(Sapere Aude)’라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생각은 불편함의 다른 이름이다. 질문하는 자는 공격받고, 의심하는 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사람들은 논리를 읽기보다 자막을 믿고,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분노를 공유한다.

 

누가 옳은가보다, 우리 편인가가 중요해진 세상. 칸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영구 미성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줄 서는 국민, 권력이 명령하지 않아도 눈치로 복종하는 시민, 이것이야말로 최고 학력을 자랑하는 21세기의 자동 인간이다.

 

. 감정의 사회, 이성의 부재

 

지금의 한국은 이성보다 감정이, 논리보다 분노가 빠르다. 정치인은 분노를 팔고, 언론은 눈물로 조회수를 벌며, 국민은 감정으로 옳고 그름을 재단한다. 칸트는 도덕을 이성의 문제로 보았다. 선의지란 이성의 명령에 따르는 의지다.

 

그러나 지금의 선의지는 좋아요버튼에 따라 움직인다. 정의는 트렌드가 되고, 진리는 유행이 된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보다 요즘 분위기가 어떤가?”를 묻는다. 이성은 생각의 엔진이 아니라, 이제 감정의 방청객이 되어버렸다.

 

. 권력이 아니라 이성이 통치

 

칸트는 법과 윤리를 구분했다. 법은 외적 강제이고, 윤리는 내적 자율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그 구분을 잃었다. 법은 정치의 무기로 쓰이고, 윤리는 여론의 도구로 전락했다. 도덕은 SNS 감시망으로 변했고, 정의는 클릭 수로 평가받는다. 감정이 통치하는 왕국에서 왕은 분노, 재상은 선동, 백성은 피로하다. 칸트의 이성의 왕국은 멀리 사라지고, 대신 감정의 왕국이 번성한다. 이성의 법칙은 조롱받고, 진리는 이모티콘 아래 묻힌다.

 

. 다시, 이성을 깨우는 용기

 

칸트는 인간의 존엄을 자율적 존재에서 찾았다. , 남이 아닌 나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유의 대행업체에 자유를 위탁했다. 남의 말이 옳다고 느껴야 안심하고, 다수의 생각이라야 믿음을 갖는다.

 

칸트가 오늘의 한국을 본다면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너희는 자유를 얻었으나, 그 자유를 남의 생각에 위탁했구나.” 철학자를 찾는 대중은 많지만, 사유하려는 시민은 드물다. 그러나 진정한 계몽은 감동이 아니라 각성이다. ‘내 머리로 사유하기 시작하는 순간그때 비로소 인간은 깨어난다.

 

. 칸트를 다시 불러야 할 이유

 

인류는 언제나 똑똑했지만, 동시에 어리석었다. 학자는 넘쳤지만, 진실을 지키는 이는 드물었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무지는 정보의 부족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사유의 포기에서 자라난다.

 

우리가 더 필요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양심의 나침반, 더 많은 분석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칸트는 말했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그 두 빛이 함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그러나 이성이 깨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같은 악몽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 악몽의 이름은 바로 생각하지 않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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