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1-16 10:11 수정일 : 2025-11-16 12:19 작성자 : 김상호 (sangho5747@hanmail.net)

또순이와 꺼벙이 —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랑
살다 보면
사랑도, 삶도, 마음도
어느 순간 툭, 하고 금이 갈 때가 있다.
또순이와 꺼벙이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살림이 빠듯해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여다보며
한숨 섞인 말이 튀어나오던 날들.
잠든 아이들 방 앞에서
“내일은 좀 나아질까…”
서로 모르게 기도하던 날들.
그때부터 집안의 돈줄은
또순이가 잡았다.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꺼벙이가 기죽지 않게 하려는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꺼벙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또순이가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밤늦게 혼자 긴 한숨을 쉬는 걸
수없이 보아왔다.
그걸 보며 가슴이 쿡, 하고 아려왔다.
그래서 그는 웬만하면 말을 아꼈다.
“여보, 나… 조금만…”
이 한마디조차
며칠이나 망설이다가야
입 밖으로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 말을 들으면 또순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왜 그런지 모를 찡한 마음이
천천히 가슴 위로 솟아오른다.
그녀는 알았다.
꺼벙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존심을 접고,
자기를 믿으며,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었는지를.
또순이는 말없이 지갑을 연다.
그 손짓 속에 수십 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벌어온 돈은 적어도
지켜온 사랑은 많았다는
그들만의 역사.
지폐 한 장을 꺼벙이 손에 쥐여줄 때
둘의 손등이 잠깐 스친다.
그 짧은 순간,
꺼벙이는
그 따뜻함 때문에
목이 메인다.
‘내가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이 사람은 나를 버티게 해줬구나…’
그 생각이 가슴을 치받아
눈시울이 불끈해진다.
또순이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당신… 꼭 필요한 데 쓰는 거지?”
말은 야무지지만
그 목소리에는
나직한 떨림이 섞여 있다.
그녀는 알고 있다.
꺼벙이가 돈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견디며 살아왔다는 걸.
그리고 꺼벙이는 알고 있다.
또순이가 돈보다
더 큰 사랑을 품고 살아왔다는 걸.
둘은 그렇게
서로가 없는 자리를 채우며
세월을 견뎌왔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이 말없이 받쳐주고,
서로의 삶을
눈물로 이어 붙이며 살아왔다.
삶이 아무리 모자라고 헐벗어도
두 사람의 사랑만큼은
언제나 넘쳤다.
그래서 꺼벙이는
또순이가 건넨 단돈 몇 천 원을 손에 쥐며
속으로 천천히 되뇌인다.
“여보…
평생을 다 바쳐서라도
나는 당신에게
절대 모자란 사람이 되지 않을게.”
그렇게 그날도,
그리고 오늘도,
또순이와 꺼벙이는
서로의 눈물 위에
조용히 하루를 얹어놓고 산다.
사랑이란,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살려주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