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경고하는 한국 정치
작성일 : 2025-11-24 12:35 수정일 : 2025-11-25 04:56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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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
칸트가 경고하는 한국 정치
1. 이성의 파산, 한국 정치가 스스로 ‘사유 능력’을 해체한 날
한국 정치는 지금 칸트가 말한 ‘이성의 자기기만(Self-illusion)’ 상태에 빠져 있다. 이성은 스스로를 성찰할 때만 유효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이성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 섰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정략·선동의 지시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적 의지(Mechanical Will)’에 가깝다.
칸트가 가장 경멸한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성적 주체가 아니라 단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반사 신경적 존재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와 시민의 일부는 바로 이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정치적 미성숙의 제도화’다.
2. 정언명령의 완전한 붕괴, 인간을 수단으로 소비하는 권력의 탐욕
칸트 윤리학의 기초는 하나다. ‘너의 행위가 인간을 언제나 목적 그 자체로 대하도록 행위하라.’ 지금 한국 정치의 구조는 이 원리를 노골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선거는 시민을 수단으로 동원하는 의식 행사로 전락했고, 공약은 거짓을 제도화한 계약, 정책은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각난 조립식 부품이 되었다.
정치는 시민의 도덕적 품위를 높여야 하지만, 오히려 시민을 선전·선동의 재료로 갈아 넣고 있다. 칸트의 기준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부도덕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고의적 훼손이다.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순간, 국가는 윤리적 공동체가 아닌 권력 집단의 도구로 전락한다.
3. 공공 이성의 사망, ‘공론장’이 아니라 ‘감정 공장’이 된 대한민국
칸트는 공공 이성을 사적 이익을 떠난 보편적 이성의 활동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공론장은 사적 이익·진영·감정에 완전히 포획되어 있다. 언론은 이성의 전달자가 아니라 감정의 유통업자가 되었고, 정당은 원칙의 해석자가 아니라 여론 공작의 제작소가 되었으며, 시민의 토론장은 이성의 법정이 아니라 분노의 시장으로 타락했다.
칸트가 말한 공공 이성이 작동하려면 보편화가 가능한 원칙 즉 누구에게나 적용이 가능한 규칙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원칙은 하루 단위로 바뀌고, 보편성은 진영의 기호에 따라 삭제된다. 이것은 공공 이성의 죽음이며, 민주주의의 실제적 종말이다.
4. 자유의 조작, ‘스스로 생각하라’는 칸트의 명령이 조롱당하는 현실
칸트는 계몽의 핵심을 단 하나로 정리했다. 사유하라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사유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된다. 생각하면 ‘배신자’, 질문하면 ‘적’, 비판하면 ‘반역자’. 진영 논리는 칸트가 말한 진짜 자유 즉, 자기 스스로 법칙을 세우는 자율성을 파괴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명령 아래에서 움직이는 타율적 존재가 된다.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모방품,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대체품이다. 이런 국가에서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정치가 설계한 행동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자동인형이나 다름없다.
5. 실천이성의 실종, 원칙 없는 권력은 이미 폭력이다.
칸트는 실천이성이 없는 권력은 폭력이라고 했다. 실천이성이란 단순히 판단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권력은 원칙이 없다. 필요하면 법치를 이야기하고, 필요 없으면 법치를 제거한다.
필요하면 자유를 외치고, 필요 없으면 자유를 탄압한다. 원칙이 아니라 상황, 도덕이 아니라 이해, 보편성이 아니라 진영, 실천이성이 사라진 권력은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설명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이다. 칸트 기준에서 이것은 이미 정치적 전제(專制)다.
6. 한국이 살려야 할 것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칸트가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단호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성이 없는 정치는 죽어 있고, 도덕이 없는 국가는 부패하며, 자율성이 없는 시민은 노예다.”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화려한 개혁도, 새 인물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성의 복권, 도덕의 재건, 자율성의 회복이다.
철학을 잃은 정치가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추락하는지 역사는 이미 수없이 증명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뿐이다. 한국 정치는 철학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철학 없이 파국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철학적 수준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