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개(氣槪) 잃은 정치, 선비 정신을 아는가?
작성일 : 2025-12-24 06:57 수정일 : 2025-12-24 15:36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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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안전교육원 원장) |
기개(氣槪) 잃은 정치, 선비 정신을 아는가?
I. 고개를 숙이는 자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미덕이지만, 굴종은 기준을 접는 비겁함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고개 숙인 사람이 너무 많다. 문제는 그들이 국민 앞에서가 아니라, 힘 있는 자 앞에서만 숙인다는 점이다. 원칙 앞에서는 꼿꼿하던 허리가 권력 앞에서는 접히는 광경, 그것을 우리는 더 이상 겸손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개의 부재요, 정치인의 자격 미달이다.
II. 기개 없는 현실주의의 초라함
현실을 고려했다는 말만큼 편리한 변명도 없다. 불의에 침묵하면서도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 부르고, 소신을 접어놓고도 책임 있는 태도라 자위한다. 그러나 기개 없는 현실 인식은 계산일 뿐이고, 계산만 남은 정치에는 존엄이 없다. 선비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선을 아는 사람이었다.
III. 줄 서지 않는 자의 고독
선비정신의 본질은 고독을 견디는 힘이다. 옳은 말이 다수가 아닐 때, 옳은 자리에 서는 용기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인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줄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이익이 올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줄은 길어지고, 침묵은 집단화된다. 모두가 서 있는데 아무도 서 있지 않은 기묘한 풍경, 그것이 기개를 잃은 정치의 자화상이다.
IV. 대쪽 같은 절개는 시대착오가 아니다.
대쪽 같은 절개를 두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기준 없는 눈치 살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퇴행이다. 선비의 절개는 타협 거부가 아니라, 타협의 한계를 분명히 긋는 태도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원칙, 그것이 있었기에 권력은 함부로 넘지 못할 선을 의식했다. 기개는 그래서 늘 불편하고,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V. 포용은 기개 위에서만 가능하다.
기개 없는 포용은 흐물거림이고, 원칙 없는 화합은 거래다. 먼저 곧게 서지 못한 자가 어떻게 남을 끌어안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정치인이 사회를 다스리겠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비정신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기개를 전제로 한 포용의 철학이었다.
VI. 지금 정치에 필요한 마지막 자산
오늘날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제도가 아니라 자세다. 말은 넘치되 태도는 사라졌고, 선언은 요란하되 책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오래된 기준이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기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자세, 그것이 선비정신의 핵심이다.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선비정신인 기개(氣槪)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