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가면 본전을 뽑았던 시절
작성일 : 2025-12-29 08:52 수정일 : 2025-12-29 10:2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집 근방에 목욕탕이 있었다. 소위 ‘찜질방’까지 갖춰진 그야말로 럭셔리 스타일(luxury style)이었다. 그래봤자 일 년에 고작 몇 번밖에 가지 않는 바람에 한 번 가면 세월아 네월아 죽쳤고, 심지어 낮잠까지 즐겼다.
욕조에 몸을 담근 뒤엔 피부색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전신을 덥힌다. 그런 다음 파란색의 이태리타월로 온몸의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이윽고 생산(?)되기 시작하는, 국수처럼 나오는 때는 정말이지 가공한 만큼의 ‘푸짐한’ 양이었다.
와~ 내 몸에 평소 무거웠던 게 바로 너희들 때문이었어? 이처럼 때를 미는 데 일등 공신인 이태리타월은 한국에서 탄생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거친 초록색 표면이 피부를 훑고 지나갈 때의 그 고통과 시원함 사이의 미묘한 경계는 자못 환상적이다. 이태리타월은 1960년대 초, 부산에서 직물 공장을 운영하던 김필곤 씨가 비스코스 레이온 원사를 이용해 만든 것이 시초다.
이 원단이 이탈리아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이태리타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한국만의 독특한 목욕 문화가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작 이태리에는 없는 게 바로 '이태리타월'이다. 우리가 어렸던 시절, 뜨거운 탕 안에서 몸을 불리고 있으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손에 끼우던 그 초록색 타월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직 멀었다. 조금만 더 참아! 본전은 뽑고 가야지?”라는 공포의 협박과 함께 벌겋게 달아오르던 등은 몹시 따가웠다 그렇지만, 정작 목욕 후의 개운함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었다.
당시 그렇게 목욕하면서 "어휴, 시원하다!”라고 이구동성 만족감을 나타냈던 어르신들의 어떤 역설은 식전부터 팔팔 끓는 해장국을 들이켜며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를 연발했던 주당들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만했다.
우리에게 이태리타월은 단순히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도구 이상이었다. 부자와 모녀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나누던 대화는 일상에서는 도무지 표출할 수 없는 진지한 어떤 밀담이자 최고의 스킨십(skinship)으로까지 발전했으니까.
스킨십은 피부의 상호 접촉에 의한 애정의 교류였다. 육아 과정에서 어버이와 자식 사이, 또는 유아의 보육이나 저학년의 교육에서 교사와 어린이 사이에서도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아무튼 그렇게 온몸을 학대(?)한 뒤에 따르는 어떤 보상이었던 바나나맛 우유 따위의 차갑고 달콤한 음료는 비로소 완벽한 목욕의 마침표로 완상되곤 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태리타월은 단순히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도구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목욕탕 순례 그리고 아들과의 찜질방 동행은 그저 다0소 등지에서 만날 수 있는 이태리타월 안에서만 맴도는 그리움의 아픔이자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