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섣달그믐' 나 자신의 뒷 모습은 어떠했는가?
지난해 12·3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시도는 많은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정치의 언어가 위로가 아닌 공포가 될 때,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키우고, 어떤 이는 따뜻한 손난로처럼 마음을 녹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공포의 대상인가, 아니면 행복을 전하는 사람인가. 한 해의 끝자락, 섣달그믐에 서면 이 질문은 더욱 묵직해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는 유독 ‘끝’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말은 시작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뒤끝이 좋지 않다는 평가는 마지막을 망친 삶을 의미한다. 한자성어 화룡점정(畫龍點睛)은 일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한 점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그 점 하나가 생명을 불어넣기도, 모든 노력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세상에는 인간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퉁이 가십거리로 남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스트레스를 주고, 어떤 이는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니 어느새 섣달그믐이다. 마지막이라는 말 앞에서 아쉬움과 허탈함이 교차한다. 또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는 무력감도 스며든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졸업, 퇴직, 은퇴, 마감, 종착역, 최후처럼 삶의 결을 바꾸는 말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이 떠날 때 감사패를 전하고 회식을 한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영성을 가진 인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늘 해를 끼치던 사람이 떠날 때는 다르다. “3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라는 말이 뒤따른다. 남는 것은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한 씁쓸한 되새김뿐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어떤 이는 가슴에 남고, 어떤 이는 가슴이 후련해진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세상에 유익한 사람인가, 아니면 유해한 사람인가.
동갑내기 어르신들 가운데서도 삶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수심이 가득하고, 어떤 이는 해안선 같은 미소를 짓는다. 차이는 대개 스트레스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
올해 유난히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정치인들이 많았다.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버겁다. 웃음을 사라지게 만든 선택의 결과로, 국민은 을사년 내내 한숨을 쉬어야 했다. 정치가 위로가 아닌 부담이 된 한 해였다.
한편 ‘청국장 신부’로 불리는 황창연 신부의 강연과 유튜브는 정반대의 반응을 얻고 있다. “나중은 없다"라는 그의 메시지는 인생과 행복, 사회를 유쾌하고도 진솔하게 풀어내며 많은 이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당신은 지금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인가, 풀어주는 사람인가. 세상에 유익이 되는 참사람으로 이 짧은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은가.
을사년 한 해를 마감하며, 섣달그믐 밤에 자신의 뒷모습을 한 번쯤 돌아보자. 우리가 남긴 마지막 점 하나는 과연 어떤 흔적으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