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한시와 현실정치의 랑데부
작성일 : 2026-01-04 06:09 수정일 : 2026-01-06 06:2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窮居罕人事(궁거한인사)
-궁하게 살다보니 사람 볼 일 드물어
恒日廢衣冠(항일폐의관)
-날이면 날마다 대충 걸치고 사네
敗屋香娘墜(패옥향랑추)
-헐은 지붕에서 노래기 떨어지고
荒畦腐婢殘(황휴부비잔)
-풀 덮인 밭둑 팥꽃이 끝물이네
睡因多病減(수인다병감)
-병이 많으니 잠마저 줄어들어
愁賴著書寬(추뢰저서관)
-글 짓는 일로 시름을 달랜다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궂은비 온다고 괴로울 게 뭐있나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맑은 날도 저절로 한숨이 나는 것을
위 글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에 남긴 시 구우(久雨)이다. ‘구우’는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인 장마를 의미한다. ‘지겹다’는 느낌의 비유 차원에서 위 시를 지은 것일 게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철학자였다.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을 썼으며 평생 시작을 통해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개인의 서정을 두루 완정(完整)한 시인이었다.
위 시는 "여유당전서" 제5권에 실려 있는 5언 율시의 한시로, 제명의 뜻은 ‘장마비’ 또는 ‘궂은비’로 항간에 많이 알려진 시이다. 개인적인 궁핍한 일상사를 통해 도탄에 빠진 농촌의 현실, 나아가 사회와 나랏일을 걱정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정약용의 「구우」는 장마철의 음울한 자연 풍경 속에 몰락한 선비의 생활상을 담아냈다. 첫 연과 둘째 연에서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 즉 ‘궁벽한’ 삶의 공간과 남루한 외양이 등장한다.
‘사람 보기 드물고’는 사회와의 단절을 상징하며,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는 선비로서의 외적 형식을 포기할 만큼 피폐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어 황량하고 쇠락한 현실을 강하게 드러내며, 장마철의 눅눅함과 궁핍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몰락한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단순히 유배 생활의 비애만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비가 그친다 해서 나아질 것도 없고, 날이 맑아진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는 말 속에는 체념을 넘어서 부패하고 혼탁한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함이 서려 있다.
특히 백성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손 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며, 궁극적으로는 가난과 부조리를 유지시키는 체제에 대한 무언의 비판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구우」에 나타난 화자의 정서로 가장 적절한 것은 ‘체념’이다.
또한 「구우」에 사용된 표현 기법은 ‘풍자법’이다. 마치 작금의 정치판을 향해 일갈하는 듯 보인다.
자격 없는 자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설쳐대며 돈이나 받아 챙기는가 하면 부동산에 투기하여 하루아침에 억만장자로 등극하는 모순의 정치인 또한 국민이 보기엔 영락없는 장마철 초가(草家)에 들끓는 구더기들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언필칭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라는 그들의 거짓과 위선에 그만 맑은 날에도 저절로 한숨이 나는 것을 어찌 제어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