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선구안]
작성일 : 2026-01-04 14:00 수정일 : 2026-02-27 01:32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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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교수(안전교육원 원장) |
마두로의 방식과 한국 정치의 데자뷔
마두로의 몰락을 다룬 세계의 수많은 보도는 한 독재자의 종말을 말했지만, 역사는 늘 인물보다 방식을 기억한다. 한 나라에서 끝난 실패는 다른 나라에서 더 세련된 언어와 민주적 외피를 두른 채 재등장한다. 베네수엘라는 특정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포퓰리즘이 제도를 잠식하는 전형적 경로를 보여준 사례집이다. 그리고 그 문법이 오늘 한국 정치의 언어와 지나치게 닮아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현재형이다. 실패는 인물이 아니라 방식으로 복제된다.
Ⅰ. 제도를 우회하는 권력 — 마두로의 교본, 이재명의 요약본
마두로 정치의 핵심은 단순했다. 대중과 직접 거래하고, 제도는 우회하며, 법은 불편해지는 순간 고치거나 무력화한다. 이 방식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재명 정권은 “국민이 원한다”, “정의다”, “개혁이다”라는 구호로 절차를 압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는 개혁 대상으로 호출되고, 견제는 발목잡기로, 반대는 기득권으로 분류됐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 논란, 반복된 판결 불복성 발언, 대통령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정치 탄압’으로 치환하는 프레임은 우연이 아니다. 마두로가 사법부를 장악했다면, 이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를 정치 논쟁 속에 녹여버렸다. 결과는 같다. 판결은 최종 판단이 아니라 해석 경쟁의 재료가 된다.
Ⅱ. 현금은 오늘, 책임은 내일 — 포퓰리즘의 재정 공식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은 언제나 재정에서 드러난다. 베네수엘라의 붕괴는 그 실험 보고서였다. 재정은 무시됐고, 미래는 저당 잡혔으며, 남은 것은 오늘의 환호뿐이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전 국민 현금성 지원 공약, 지역화폐의 상시 확대, 재원 대책이 불분명한 복지 패키지는 ‘정의’로 포장되고, 재정 건전성 질문은 ‘비인간적’이라는 도덕적 비난으로 봉쇄한다.
국가는 가계부가 아니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국가 역시 결국 계산서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침묵한다. 마두로는 석유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고, 이재명 정권은 세금과 국채가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서 정책을 설계한다. 포퓰리즘은 늘 이렇게 말한다. 비용은 나중에, 책임은 다음 정권에.
Ⅲ. 가장 먼저 흔들리는 중립 — 사법과 군을 둘러싼 위험한 언어
독재의 전조는 사법과 군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사법은 느리다고 공격받고, 군은 위험하다고 의심받으며, 안보는 시대착오로 취급된다. 마두로는 군을 정치화했고, 사법부를 침묵시켰다. 한국에서는 더욱 세련된 방식이 쓰인다. 사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압박받고, 군과 안보는 ‘긴장 완화’라는 미명 아래 힘을 잃는다.
대북 유화 메시지의 정치적 활용, 안보 이슈의 정략화는 제도의 중립성을 잠식한다. 군이 정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사법부가 여론과 권력의 기류를 재기 시작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후진 기어를 넣은 상태다.
Ⅳ. “나는 다르다”는 말의 함정 — 모든 포퓰리스트의 자기변명
모든 포퓰리스트는 말한다. “나는 마두로가 아니다.” 차베스도, 마두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역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권력을 제한하려 하는가, 아니면 정당화하려 하는가. 제도를 존중하는가, 아니면 통과의례로 소비하는가.
이재명 정권이 정말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비판을 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고, 사법부를 장애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하며, 군과 안보를 정치적 메시지의 소품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름’은 단지 속도만 조절된 마두로식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Ⅴ. 역사는 의도가 아니라 기록으로 판결한다.
마두로의 몰락은 남미만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포퓰리즘과 권력 중독이 제도를 어떻게 침식하고 국가를 소모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준 기록이다. 한국은 아직 그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논리를 반복하며, 같은 제도를 불편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의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직 기록으로만 판단된다. 훗날 역사서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경고는 충분히 제시되었으나 무시되었고, 권력은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았으며, 제도가 무너진 뒤에야 모두가 그 대가를 이해했다.”이 문장이 한국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