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 얼굴 보는 거울과 같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지만, 내가 찡그리면 나는 혼자다.

작성일 : 2026-01-06 12:57 수정일 : 2026-01-06 21:34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세상은 내가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혼자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지만, 내가 찡그리면 나는 혼자다.

이 단순한 진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주 잊힌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밀어내며 산다.

아침 출근길, 아파트 주차장은 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통행을 가로막은 가로 주차는 마음에 긍휼함이 없다면 하루의 시작부터 분노가 앞선다. 

사실은 내가 늦게 나섰을 뿐인데, 상황은 곧 ‘남의 잘못’이 된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세대당 주차 대수가 정해져 있지만, 기준을 초과한 차량 보유로 갈등은 반복된다. 정식 주차 공간을 넘는 차량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로 주차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작은 배려가 사라질 때 그것은 다툼의 씨앗이 된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교통 정책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어린이 보호를 위한 30km 속도 제한은 취지 자체는 옳다. 문제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행정이다.

유성구 상대초등학교 근처 8차선 대로에서는 갑작스럽게 제한 속도가 낮아져 사고 위험은 오히려 가중시킨다. 실태조사 없는 설치, 현장 여건을 무시한 정책은 안전이 아닌 운전자들에게 불만의 씨앗을 낳는다.

정책은 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심함이 빠질 때 선의는 부담이 된다.

행복지수는 물질의 풍요로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가 삶을 갉아먹는다. 대중교통에서 연로한 어르신이 서 있어도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청년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언젠가 그들 역시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을 아직은 모를 뿐이다. ​그렇다고 원망만이 답은 아니다. 어르신이 먼저 다가가 부드러운 눈길을 건네고, 청년이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 그 짧은 교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섬김을 받는 어르신은 존중받았다는 기쁨을 느끼고, 양보한 청년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진짜 불행해서가 아니라, 남의 행복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감사와 기쁨 대신 비교와 불만을 선택할 때, 삶은 스스로 무거워진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마음의 태도는 결국 삶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힘겹게 살 때 들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오래 남는다. 그러나 행복에 겨워 살 때는 주변이 보이지 않고, 그 교만이 인생을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을 오를 때는 잔가지 하나까지 보이지만, 내려올 때는 큰 나무만 보이는 것과 같다.

보이는 것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 진정한 행복은 베풀고 나누는 삶 속에 있다. 그래서 기부와 섬김으로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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