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꽁짜로 얻는것이 아니다
작성일 : 2026-01-15 08:30 수정일 : 2026-01-15 22:06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지키지 않는 자유는 반드시 사라진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해 왔다.
베트남에는 성당은 있지만 신부가 없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공산주의 체제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웅변한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무조건 항복한 이후 베트남은 20년 가까이 국경을 폐쇄하고 철저한 공산화 작업에 돌입했다. 이른바 ‘인간개조’라는 이름의 수용소가 전국에 세워졌고, 군인·경찰·공무원·교사·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은 모조리 끌려갔다.
특이하게도 성직자들은 ‘개조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수용소가 아닌 즉각 처형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베트남에는 성당은 있으되, 자국인 신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약 100만 명이 강제 수용되었고, 장교·경찰 간부·고위 공무원·보직 교사·자본가·여당 정치인 상당수는 개조가 아닌 숙청을 당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공산 통일의 일등 공신이었던 베트콩 지도자들조차 모조리 숙청되었다는 점이다. 자유를 맛본 좌파는 언젠가 배신자가 된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논리였다. 이는 6·25 이후 김일성이 남로당의 핵심 인물을 가장 먼저 제거한 것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다. 필요할 때는 혁명 동지였고, 체제가 완성되면 제거 대상이 된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바다로 탈출한 보트피플만 100만 명이 넘었고, 육로 탈출까지 합치면 150만 명 이상이 조국을 등졌다. 탈출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만 10만 명이 넘는다. 지금도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인근 호수에는 당시 탈출민들이 만든 수상가옥 마을이 남아 있다.
이런 대규모 학살과 숙청 끝에 베트남 경제는 완전히 붕괴됐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을 본떠 ‘불가피하게’ 개방 경제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제거한 탓에, 베트남 사회는 오랫동안 심각한 인구 공백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일부 좌파 세력은 “공산화되어도 베트남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공산 통일이 이뤄질 경우 가장 먼저 제거될 대상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체제는 충성 경쟁을 요구하고, 그 경쟁의 끝은 숙청이다. ‘유일 사상 국가’에서 애매한 신념은 곧 반역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당시 베트남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당시 베트남 정권은 적어도 민주주의 체제였고, 좌익의 폭주를 통제하지 못한 무능의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권력 전반이 한쪽 이념에 기울어 있다는 우려를 받고 있다.
입법·사법·행정 전반의 균형이 흔들리고,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적 토양까지 형성돼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 세대다. 교육 현장의 이념 편향으로 인해 청년층 상당수가 자유의 가치에 둔감해졌고, 대한민국은 스스로 공산화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손을 뗀 것은 패배를 몰라서가 아니라 전략적 판단이었다. “자유를 지키려 하지 않는 국민을 위해 피를 흘릴 수는 없다”는 냉정한 결론이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유를 지킬 의지가 없다면, 어떤 동맹도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는다. 반대로 국민이 자유와 헌법 가치를 분명히 지켜낼 때, 동맹은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자유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위기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 채 안주하는 국민은, 결국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된다. 깨어 있는 시민만이 자유를 지킬 수 있고, 자유를 지키는 나라만이 동맹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은 선택의 시간이다.
자유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잃은 뒤 후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