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에 젖 주지 않는 나라.

작성일 : 2026-01-22 09:56 수정일 : 2026-01-22 10:22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는 나라.

“조선시대 백정의 자식이라 운다고 젖도 안 준다”는 말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그것은 약자의 울음에 귀를 닫아버린 사회의 잔혹한 초상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연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세상에 진실만 존재하는 나라는 없다. 똑똑한 사람만 있는 나라, 가난한 사람만 있는 나라, 권력자만 있는 나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고, 앞줄이 있으면 반드시 뒷줄이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1등이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꼴찌의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진보만 있고 보수만 있는 사회는 비정상이다.

좌파만, 우파만 옳다는 주장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는 균형을 찾는다. 그런데 만약 한 정당의 구성원 모두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함과 비난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을 과연 건강한 정당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아가페적 사랑의 표현이다. 울음은 약자의 언어이고, 젖을 주는 행위는 책임 있는 자의 응답이다. 잘났다고, 똑똑하다고 스스로를 포장하는 이들의 내면에 과연 어떤 사랑이 자리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지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8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좌파든 우파든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그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상대의 고통을 외면한 채 비아냥과 조롱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정치 이전에 인간의 문제다.

우는 아이를 보고 “네가 언제까지 우나 보자”라고 말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일까. 집을 뛰쳐나간 자식을 향해 “언제까지 밖을 떠도는지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부모가 과연 부모일까. 국가는 부모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공동체의 책임 있는 어른이어야 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다툼의 시작은 언제나 일방적이지 않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는 없다. 정치적 갈등의 책임을 상대에게만 전가하는 태도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분열을 키울 뿐이다.

현재 단식 중인 정치인을 향해 비아냥대는 지도부가 있다면, 그들은 권력을 가졌을지언정 인간의 탈을 썼다고 말하기 어렵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감정적 미움을 억누르라는 수준의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바라는 적극적 태도다. 보복과 복수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이다.

사랑은 자격을 보고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 속에 하루를 보낸다.

야당이 제안한 작은 정책 하나라도 포용하는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그 자체로 더 넓은 공동체 의식을 국민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폭력과 인내, 그리고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여당 지도부 역시 한 번쯤은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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