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1-23 20:51 수정일 : 2026-01-23 21:10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천주교는 되고, 왜 개신교는 안 되는가?
이재명 정부 ‘종교 탄압 프레임’의 위험한 이중잣대, 폭력적 표현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통령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언사는 종교를 막론하고 명백히 규탄받아야 하며, 법적 책임이 따른다면 개별 행위자에게 엄정히 물어야 한다.
이 원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이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특정 교회의 설교 발언을 거론하며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제재가 엄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 선동에 대한 경고로만 보면 타당한 발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종교와 정치의 결합 자체를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그 ‘시스템’을 문제 삼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같은 잣대가 모든 종교와 모든 정치 진영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가.
이미 과거 일부 천주교 성당과 정치 집회 현장에서도 “윤석열은 죽어야 한다”는 취지의 과격한 표현이 공개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때 정부와 여권은 이를 ‘개인의 과격한 표현’ 또는 ‘상황적 발언’으로 정리했다. 종교 전체의 문제로 확장하지도 않았고,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식의 강경 담론도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하다.
왜 어떤 종교의 과격 발언은 개인 일탈이고, 어떤 종교의 발언은 구조적 위험이 되는가.
이 지점에서 현 정부의 태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비친다. 폭력적 언사는 발언의 주체가 누구든, 정치적 유불리가 어디에 있든 동일한 기준으로 다뤄져야 한다. 법치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기준의 공정성이다.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선택적 분노가 종교 탄압의 명분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수의 과격 발언을 빌미로 특정 종교 공동체 전체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순간, 국가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동시에 침해하는 길로 접어든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집단적 책임 전가다.
대통령은 종교의 정치 개입을 “총을 국민에게 겨누는 반란 행위”에 비유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종교를 관리·감시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허용되는 발언과 허용되지 않는 발언의 경계를 정치적으로 설정하는 것 또한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총구가 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폭력 선동은 종교·이념을 불문하고 개별 행위로서 엄정히 처벌하라.
둘째, 소수 사례를 전체로 일반화하는 프레임 정치은 중단해야 한다.
셋째, 어느 편이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정치는 갈라치기의 기술이 아니다.
정의는 선택될 수 없고, 분노는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말하려 한다면, 비판의 칼날은 언제나 자기편을 먼저 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프레임은 내일의 탄압으로 되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