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그릇된 사회장?

작성일 : 2026-01-28 04:26 수정일 : 2026-02-07 09:50 작성자 : 이 천석 대기자 (cheonsuk@gmail.com)

[이천석의 사설: 기고]

1️⃣ 사회장이란 무엇인가 ― 법이 아니라 “관행의 문제”

**사회장(社會葬)**은 국장·국민장처럼 법률로 엄격히 규정된 장례 형식이 아닙니다.
주로 정당, 시민사회, 노동·문화·종교 단체 등 ‘사회’가 합의해 주관하는 장례를 관행적으로 이렇게 부릅니다.

👉 핵심은 법적 자격이 아니라
👉 사회적 합의와 도덕적 정당성입니다.

따라서 사회장은

  • “공이 과를 압도하는가?”

  • “이 인물의 삶이 사회 통합에 기여했는가?”

  • “특정 진영을 넘어 사회적 존경을 받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이 ‘예’일 때만 가능해야 합니다.


2️⃣ 사회장의 일반적 기준(관행적·윤리적 기준)

사회장이 정당화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회 통합에 기여했는가

    • 갈등을 조정했는가, 아니면 증폭시켰는가

  2. 민주주의·법치·공공선에 대한 기여

    • 제도와 절차를 존중했는가

  3. 권력 남용·부패·도덕적 흠결이 치명적이지 않은가

  4. 사후에도 광범위한 사회적 존경이 존재하는가

    • 특정 진영의 추앙만으로는 부족

  5. 역사적 평가가 비교적 정리되어 있는가

👉 이 중 한두 개만 결여돼도 사회장은 심각한 논쟁 대상이 됩니다.


3️⃣ 사회장 또는 이에 준하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의 예(원칙 중심)

  • 군사·권위주의와 단절을 상징하거나

  • 민주화·인권·노동·사회적 약자 보호에 있어
    비교적 초당적 존중을 받은 인물들이
    사회적 장례의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 **“논쟁은 있었으나, 사회를 분열시킨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4️⃣ 이해찬은 사회장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평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해찬은 사회장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 ① 사회 통합이 아닌 ‘진영 정치의 상징’

  • 이해찬의 정치적 궤적은 조정자·통합자가 아니라
    강경 진영 정치의 핵심 인물로 요약됩니다.

  • 그는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상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와 태도를 반복해 왔습니다.

❌ ② 권력 중심·패권 정치의 설계자

  • 민주당 내에서 다양성보다 줄 세우기,
    토론보다 충성 경쟁이 강화된 시기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 이는 한국 정치를 의회 민주주의에서 팬덤 정치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 ③ 제도 파괴와 정치 불신의 책임

  • 강성 지지층을 정치 동력으로 삼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유리했을지 몰라도,

  • 장기적으로는 정치 혐오·사회 분열·사법 불신을 심화시켰습니다.

❌ ④ 사후에도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음

  • 이해찬에 대한 평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 이는 사회장의 필수 조건인
    ‘광범위한 사회적 존경’이 부재함을 의미합니다.


5️⃣ [사설] 이해찬 사회장을 반대한다 — 분열의 정치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사회장은 추모가 아니라 평가다.
이해찬에게 사회장은 과분하다.

사회장은 한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삶이 사회 전체에 남긴 궤적에 대한 최종적 승인이다.

이해찬의 정치 인생은
통합보다 대결을, 숙의보다 동원을,
책임 정치보다 진영 논리를 선택해 온 과정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상대를 설득할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위험한 문법을 정상화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정치는 증오의 언어로 오염되었고,
국민은 편 가르기의 소모전에 지쳐갔다.

이런 인물에게 사회장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분열의 정치에 대한 사후 면죄부이며,
패권 정치에 대한 역사적 승인
이다.

사회장은 통합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해찬은 끝내 통합의 인물이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 인간적 애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적 예우는 다른 문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의 정치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는가.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사회장 또한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마무리 한 줄

사회장은 모든 정치인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가 신중히 부여하는 최후의 명예다.
이해찬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대전=더뉴스라인 이천석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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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e's Editorial

Title: No to a “Social Funeral” for Lee Hae-chan — Honor Must Follow Unity, Not Division

A social funeral is not a private matter of mourning.
It is a public judgment.

Unlike state funerals defined by law, a social funeral derives its legitimacy from broad social consent. It is granted only when an individual’s life and legacy have contributed meaningfully to social cohesion, democratic values, and the common good.

By this standard, Lee Hae-chan does not qualify.

Throughout his political career, Lee was not a figure of reconciliation or moderation. He stood at the center of factional politics, reinforcing a confrontational style that framed political opponents not as partners in democratic debate, but as enemies to be defeated. This approach may have energized a loyal base, but it came at a steep cost to the health of Korea’s democracy.

Under such politics, compromise was ridiculed, dissent was delegitimized, and institutions meant to serve the whole public were increasingly viewed through a partisan lens. The result has been deeper polarization, growing political cynicism, and a public exhausted by endless ideological warfare.

A social funeral is meant to symbolize unity beyond factions. Yet Lee Hae-chan remains, even in death, a deeply divisive figure. Public evaluations of his legacy are sharply polarized, lacking the broad respect that such an honor demands.

Human compassion allows us to mourn any death.
Public honor, however, must be earned.

Granting a social funeral to Lee Hae-chan would not be an act of reconciliation. It would be a posthumous endorsement of confrontational politics that have fractured society and eroded trust in democratic processes.

Korea does not need symbolic gestures that deepen division.
It needs a clear standard: social honor must belong to those who united the nation, not those who thrived on its di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