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2-02 00:07 수정일 : 2026-02-01 18:08 작성자 : 김상호 (sangho5747@hanmail.net)

논설위원 김상호
북괴군 남침
스탈린의 개,김일성과 남로당 대표 박헌영이 소련과 중공을 방문, 1950년 4월 10일 스탈린의 남침 전쟁 승인과 5월 14일 모택동의 지원 약속을 받고 1950년 6월 25일 04:00 시 38선 전역에서 기습남침과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참전으로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1953년 7월 27일 22:00 휴전까지 만 3년 1개월 2일간 전쟁 참화를 겪게 했다.
국군 전사/부상/실종 피해 608,033명, 경찰 19,034명, 학도의용군 7,000명 등 총 634,067명 피해, UN군 전사/부상/실종 피해는 545,908명, 민간인 사망/부상 피해 200만~300만명이였다.
큰 틀에서 도발의 특징을 살펴보면 1980년대까지는 주로 공비나 간첩 침투가 절대적이었다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핵(核)이나 미사일, NLL(서해북방한계선), 방사포 관련 도발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북한의 대남첩보원 발각 횟수: 5,500여 회 (1953년~1980년) (1.7일당 1회꼴),한국군·경찰에게 잡히거나 사살된 북한측 공작원 및 무장공비: 2,973명 (1953년~1980년) (3.3일에 1명꼴),2000년도 지금까지북한의 도발은 다양하게 끊임없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이러한 대남 도발의 여부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보다는 북한 내부의 사정과 연관이 깊다.
특히 2000년대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이용,북한은 핵실험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특수부대, 수중전 등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도발을 지속하였다.
2020년대에는 미사일 개발은 물론 간첩 동조 사건 및 사이버 공격도 감행하는 듯 도발의 수위가 한 수 더 올라갔다. 아예 '대한민국'이 동포도 아니며 전쟁시 '수복'할 대상이라는 김정은의 발언은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이에 관련한 도발도 감행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은 2024.1.15. 14기 10차 최고인민회의 결과 김정은 지시로
남북 대화 폐기, “대한민국은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사회주의헌법에 명시되었고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 영토 완정토록 하였다.
이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시절 2024.1.19. <우리북한. 김일성 김정일 노력(남침도발?)을 훼손 폄훼 말라고 발언 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주적이 없어졌다, 단지12.3세력과 국힘당만 있을 뿐이다.
북한과 대화를위한 노력에 앞서 야당과의 대화 협력이 우선이며 국민통합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요인들은 남침전범집단을 ‘주적’이라 말 못해.....
국가정보원장 이종석,통일부장관 정동영,보훈부장관 권오을,고용노동부장관 김영훈등.....
남침전범집단이 主敵이 아니라면 설마 同志라거나 友軍이란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런 자들의 아비나 할아비는 6.25 때 軍. 警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신앙과 양심은 위기 속에 더욱 선명 해 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보면 진정한 신앙의 양심과 도덕은 환란과 핍박 중에 더욱 정제되고 빛이 났다. 그리고 진정한 지도자는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역사의 물고를 바꾸고 위대한 교훈을 남긴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한국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거침없이 우리나라를 진격해 왔다. 우리 군인들은 밀리고 밀려 낙동강 전선을 힘겹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라가 공산화되기 직전, 다부동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던 백선엽 장군의 분투와 UN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키고 북진할 수 있었다. 9·15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9·28 서울 수복을 했다. 그러나 서울 탈환을 할 때, 전공은 미군이 세웠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참에 남과 북을 통일해야겠다’ 결심하고, 우리 국군과 UN군을 격려해서 전선은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평양 수복이 눈앞에 보였다.
국군 보병1사단이 평양을 수복하고 다른 사단과 UN군도 거의 같이 평양을 탈환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평양 시민은 4년 가까이 공산 정권에게 박해, 수탈, 감시, 강제 동원 등등..참혹한 죽음을 보았던지라, 평양 시민들은 국군을 열렬히 환호하고 환영했다.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나와 만세를 외쳤다. 그것을 기념하는 <평양 수복 기념 손수건>의 내용은 이렇다. 먼저 「UN기, 성조기, 태극기, 영국기 깃발이 있고, 영어로 Daegu, Daejeon, Incheon, Seoul의 전투 장면이 있고, 마지막에는 Take up Pyongyang」이라고 인쇄되었다. 지금의 디자인으로 보면 다소 조잡해 보이지만, 평양 수복의 기쁨을 모두가 나누려고, 한국군, UN군, 미국군, 영국군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지금부터 80년 전 자료다.
평양 수복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평양 시민의 환영을 받으면서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평양 수복> 연설을 했다.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공산당의 폭정 아래 신음하던 평양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감격을 금할 길 없습니다. 이 땅은 본래 <자유>와 <신앙>의 땅이요, 민족의 양심이 살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거짓과 폭력으로 이 나라를 빼앗고,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를 말살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전쟁은 단순한 영토싸움이 아닙니다. 이는 자유와 공산주의, 진리와 거짓 <신앙>과 <무신론>의 싸움입니다. 북한 공산당은 민족을 위한다고 말했으나, 실상은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동포들을 학살하고, 나라를 파괴했습니다. 우리는 이 거짓을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민족을 살리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남과 북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공산 폭정을 몰아내고, 자유와 정의 위에 <통일 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전쟁에서 죽어간 수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나는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정의의 편에 선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맙시다. 자유대한민국은 반드시 완전한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녹음 기록이 아니지만, 여러 사료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 등에서 나온, 자유, 반공, 신앙, 통일이 핵심이었다. 그 후 UN군과 한국군은 계속 북진했고,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중국으로 도망갔던 김일성이 중국 인민군대를 불러드려, 이른바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결국 아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군에는 실상 조선족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중국은 조선족을 총알받이로 삼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방해한 주적(主敵) 이다. 또 조선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엄연히 중국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칼 전쟁이 아닌, 이념 전쟁 중이고, 역사 전쟁 중에 있다. 지난 80년 동안 이승만 죽이기 운동이 계속 되어 왔다. 그래서 이승만이 세운 자유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는 중국 세력은, 자유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까지 모든 영역에 포진하고 있다.
어째서 이 나라는 국부(國父)이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가 없는지!
그리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주적 북한과 중국을 위해 눈치보고 쎄쎄 하고 있는 것인지,이것이 우리의 외교 안보 전략인지 되묻고 싶다.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먼저 주적 개념을 명확히 하고 확고한 안보 태세 유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한미 연합 훈련 강화,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등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효과적인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국제 여론을 조성해나가야 하고,사이버 공격, GPS 교란 등 북한의 비대칭 도발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우리의 비대칭 전력을 개발하여 억제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