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선구안]
작성일 : 2026-02-10 14:49 수정일 : 2026-02-26 13:24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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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원장(안전교육원) |
대전·충남 행정 통합, 해외 사례로 검증된 성공 조건과 졸속 처리의 위험
대전·충남 행정 통합 논의가 급격히 부상했다. 문제는 통합의 필요성보다, 이를 처리하는 정치의 방식이다.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해외 사례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통합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며, 절차를 무시한 정치적 속행은 실패로 귀결된다.
Ⅰ. 생활권과 행정구역 불일치, 보편적 문제
도시권 확장과 교통 발달로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광역권, 프랑스 파리 대도시권, 일본 도쿄권역 모두 같은 문제에서 출발했다. 이들 국가는 공통으로 “도시 기능은 하나인데 행정이 쪼개져 있다”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제도 개편에 나섰다.
대전과 충남 역시 사실상 하나의 기능권역이다. 의료, 교육, 노동시장, 여가 공간, 환경 관리까지 통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행정은 따로 움직인다. 이는 효율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책 책임이 분산되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금산 지역과 같은 대전 생활권도 이참에 고려 대상이다.
Ⅱ. 프랑스 그랑파리, 단계적 광역화 모델
프랑스는 2010년 「그랑파리법」을 통해 파리시와 주변 130여 개 기초자치단체를 ‘그랑파리 메트로폴’로 묶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번에 이루어진 통합이 아니라 단계적 제도 구축이었다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교통과 주거정책 같은 기능 통합부터 시작했고, 이후 광역 정부의 권한을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동시에 기초자치단체의 자치권은 유지했다. 이 모델의 핵심은 “광역은 전략, 기초는 생활”이라는 역할 분담이다.
먼저 광역 통합과 읍면동 권한을 강화하고 생활권 실태조사와 교통 환경을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 주민투표로 기초단체 재편안을 확정하고 확정된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는 대전·충남 통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광역 통합만 서둘고 기초자치단체 구조를 건드리지 않거나, 반대로 기초 통합을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면, 행정 효율과 민주성 모두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Ⅲ.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실패 사례가 주는 경고
독일은 베를린시와 브란덴부르크주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1996년 주민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되었다. 통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재정 부담과 정체성 문제, 권한 재분배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실패 사례는 통합이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합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독일은 이후 강제 통합을 포기하고, 광역협력 체계로 방향을 전환했다. 즉, 제도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통합은 오히려 분열을 낳는다.
Ⅳ. 일본 기초자치단체 통합, 성과와 부작용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은 생활권 중심 통합을 통해 행정 효율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주민과 행정 간 거리가 멀어지고, 주변부 소멸이 가속화됐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래서 일본은 이후 소규모 자치와 지역협의체를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이는 통합이 곧바로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여 통합은 반드시 하부 단위의 자치 강화와 병행되어야 한다.
Ⅴ. 민주적 정당성은 입법과 선거에서 나온다.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다. 통합은 반드시 입법과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수차례 법 개정과 지방선거를 통해 광역권을 완성했고, 독일은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했다. 일본도 국회 입법과 지방의회 결정을 통해 합병을 진행했다. 따라서 대전·충남 통합 역시 국회 입법과 지방선거를 거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 절차를 속도전 정치로 훼손하려는 시도다.
Ⅵ. 민주당의 ‘속행 처리’는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
현재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민주당이 이 사안을 “정권 견제용 정치 이슈”로 소비하며, 충분한 설계 없이 속행 처리할 가능성이다. 해외 사례 어디에서도 광역 통합이 졸속 입법으로 성공한 경우는 없다.
특히 다음 세 가지가 빠진 통합은 실패한다.
※ 기초자치단체 재편 원칙
※ 주민자치와 하부 권한 강화 장치
※ 재정 이전과 권한 분산 구조
이 중 하나라도 성실한 과정 없이 법안을 처리한다면, 통합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지방 집중이 되고, 민주주의는 강화가 아니라 후퇴가 된다. 이는 행정 통합을 ‘개혁’이 아니라 ‘정치 이벤트’로 전락시키는 길이다. 민주당의 통합 자체에 반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설계 없는 속행 처리에는 반대해야 할 책임이 있다. 통합을 막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은 통합의 질을 지키는 정당이어야 한다.
Ⅶ. 통합은 사건이 아니라 제도 진화 과정이다.
대전·충남 통합은 단번에 끝낼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통합은 10년 이상에 걸친 제도 진화 과정이다. 광역 통합 → 기능 협력 → 기초 재편 → 주민자치 강화라는 단계가 필요하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지금 합치자”가 아니라,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생략한 속행 처리는, 통합의 성공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 먹는 행위다.
결론적으로 통합의 적은 반대가 아니라 졸속이다.
대전·충남 행정 통합의 성패는 찬반이 아니라 방식에 달려 있다. 해외 사례는 분명히 말한다.
설계된 통합은 성장하고, 졸속 통합은 분열한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지방자치를 말하려면, 통합을 막는 정당이 아니라, 통합을 제대로 설계하도록 요구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속행 처리는 정치적으로는 쉬울지 몰라도, 제도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통합은 정치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헌법적 변화에 준하는 사안이다. 그 무게를 외면한 속도전은, 실패한 해외 사례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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