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깍발이 아빠

23년 줄곧 1위는 위대한 업적

작성일 : 2026-02-10 17:00 수정일 : 2026-02-10 17:40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이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하는 \'2026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All Star 및 제약 부문에서 23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

 

나는 본디 딸이 귀한 집안의 장손이었다. 그런데 박복하여 마치 심청(沈淸, 고대 소설 <심청전>의 여자 주인공)처럼 그만 너무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또래들은 모두 경험한, 살갑고 따듯한 모정을 느끼지 못하며 외롭게 성장했다.

 

그게 한이 되었던 탓일까, 첫사랑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덜컥 결혼한 것은 내 나이 불과 23살 때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꽤 이른 나이에 장가를 간 셈이지만 당시로선 크게 빠른 것도 아니었다.

 

이듬해 믿음직스러운 옥동자를 낳고 가장의 책임에 충실하자며 신발 끈을 질끈 더 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 기간 투병하시던 편부께서 그만 덜컥 이승을 버리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과 더 지독한 외로움이 동시에 습격했다.

 

1980년대 초반,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면서 한 자녀로 만족하라는 흐름이 만연했다. 그러나 너무도 외롭고 헛헛했기에 아내를 장기간 설득하여 두 번째 아이를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덕분에 금지옥엽이자 얼뚱아기 외동딸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제 오빠도 똑똑했지만, 딸은 영리하기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유치원을 다닐 적부터 어찌나 공부를 잘하였던지 원생 부모님들의 부러움이 범람하는 강물을 이뤘다.

 

여세는 계속하여 이어졌다. 줄곧 전교 일 등으로 초..고등학교를 석권했다. 국립대학도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4년 연속 장학금을 받았다. 그렇게 마치 파죽지세의 월등한 성적으로 질주한 딸은 23살이 되던 해, 수석 졸업의 영광까지 안으면서 자타공인 재원(才媛)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꼴뚜기장수(재산이나 밑천 따위를 모두 없애고 어렵게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가장의 역할 감당조차 변변치 않았던 나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딸을 바라만 보기에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오늘 자 신문에서 유한양행이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하는 '2026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All Star 및 제약 부문에서 23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는 반가운 뉴스와 만났다.

 

실로 대단하며 경이적 기록이 아닐 수 없어 감탄했다. 나도 평소 유한양행 의약품이라면 믿고 애용하는데 그래서 마치 내 일처럼 반가웠음은 물론이다. 상식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 23년 동안이나 줄곧 1위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다.

 

관련 뉴스를 보면서 사랑하는 내 딸이나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이나 ‘23년 연속이라는 어떤 닮은꼴에 그만 넉넉한 만족의 웃음이 주저 없이 터져 나왔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그럼 또 어때. 이게 바로 딸깍발이(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으로, 가난한 선비를 낮잡아 이르는 말) 아빠인 나의 초상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