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란을 낸 자가 나쁜가, 분란을 키운 자가 더 나쁜가

12.3 비상계엄

작성일 : 2026-02-14 10:54 수정일 : 2026-02-14 11:38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분란을 낸 자가 나쁜가, 분란을 키운 자가 더 나쁜가

산불이 나면 우리는 먼저 불을 지른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동시에 묻는다. 예방은 제대로 되었는가, 위험 신호는 방치되지 않았는가. 원인과 책임은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논쟁 역시 그렇다. 그 조치가 적절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분명 엇갈린다.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판단이 성급했고 정치적 미숙함이 있었다고 본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그 이전의 극단적 대치, 반복된 탄핵 시도, 강경한 입법 충돌이 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정치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과정 또한 중요하다. 갈등이 누적되고 타협의 공간이 사라질 때, 극단적 선택은 등장한다.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왜 그런 상황까지 갔는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하듯, 작은 균열이 방치되면 더 큰 파열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이 대립을 반복하고 상대를 협치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민주주의의 토대는 흔들린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비상 조치든 국민적 공감과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비상계엄이든, 강행 입법이든, 무차별적 정치 공세든 모두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정치의 실패다.
 
여야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거대 야당의 강경 전략이 정국 경색을 심화시켰다면 책임이 있고, 집권 세력이 갈등을 관리하지 못했다면 역시 책임이 있다. 권력을 쥔 쪽은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정의 원칙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감정적 공방이 아니다. 왜 정치가 타협을 잃었는가, 왜 극단이 일상이 되었는가를 묻는 냉정한 자기 성찰이다. 분란을 낸 자와 분란을 키운 자를 구분하기보다, 갈등을 멈출 자가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
 
정치는 투쟁이 아니라 운영이다. 승리가 아니라 안정이 목적이어야 한다. 국민은 진영의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혼란의 종식을 원한다.
 
이제는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멈추고, 책임의 무게를 나누며, 제도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을 때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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