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서" 라는 이유로 축구,야구,소풍을 금지하는 학교

우리는 무엇을 위임했는가

작성일 : 2026-02-16 07:28 수정일 : 2026-02-16 07:56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또 넘어져도 "난 할 수 있어" 악바리 성실함과 끈기 강한 정신력의 스노보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가온

 

"위험해서" 라는 이유로 축구,야구,소풍을 금지하는 학교

 우리는 무엇을 위임했는가

초등학교 입학 시즌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자녀교육 위임 선서”를 한다. 부모의 교육 및 지도 권한 일부를 학교에 위임하고, 교권을 존중하며,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겠다는 다짐이다.

말 그대로 아이의 성장 과정 일부를 학교에 맡기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초등학교에서 축구, 야구, 소풍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했다는 보도를 접하며 고개를 갸웃등 하게 된다. 심지어 운동회에서 1·2·3등을 가리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혹여 아이들이 다칠까, 패배감을 느낄까 염려해서다.

과연 무균실에서 자란 아이가 더 건강할까.

아니면 친구들과 부딪히고, 넘어지고, 화해하며 뛰노는 아이가 더 단단해질까.

초등학교 시기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황금기’다. 신체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 규칙과 도덕적 가치관을 배우는 결정적 시기다.

이때의 경험은 평생을 좌우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협력과 경쟁을 배우고, 갈등을 통해 타협을 배우며, 실패를 통해 회복탄력성을 기른다.

위험을 이유로 도전을 차단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무엇을 지켜주고 무엇을 빼앗는 것일까.

이번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최가온 선수의 성장 과정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훈련 중 머리를 다쳐 헬기로 이송되기도 했고, 공중 회전 연습 중 큰 부상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정상에 섰다. 위험을 감수한 도전,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이 오늘의 영광을 만들었다.

물론 학교 안전은 중요하다. 아이의 생명과 건강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그러나 ‘공을 차다 다칠 수 있으니 축구를 금지한다’는 논리는 ‘밥을 먹다 체할 수 있으니 금식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고 예방은 필요하지만, 예방의 이름으로 교육의 본질을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학부모가 자녀교육 위임 선서를 했다면, 학교의 교육적 판단을 일정 부분 신뢰해야 한다. 사사건건 문제 삼고, 작은 갈등에도 즉각적인 책임을 묻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교사가 아이들을 마음껏 지도할 수 있겠는가. 교권이 위축된 교실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두려움과 눈치뿐이다.

그렇다고 학교의 일방적 금지 조치가 정답일까.

해결책 제시 없이 금지부터 내리는 행정은 교육이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위험을 줄이되 도전의 기회를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호와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초등학교는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때로는 손해도 보며 공동체를 배운다. 이 과정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기초체력이 된다.

우리는 아이를 학교에 맡기며 무엇을 위임했는가.

안전만을 위한 관리인가, 아니면 성장까지를 포함한 교육인가.

위험을 무릎 쓴 도전이 한 사람을 금메달 시상대에 세웠듯, 적절한 실패와 경쟁은 아이를 단단한 시민으로 키운다. 금지의 교실이 아니라, 도전과 책임이 공존하는 교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학부모와 학교가 함께 만들어야 할 진짜 교육공동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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