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위에 정치, 정치 위에 눈치, 눈치 위에 수치

지금은 지식인의 수난 시대다.

작성일 : 2026-02-20 07:12 수정일 : 2026-02-20 08:30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법치 위에 정치, 정치 위에 눈치, 눈치 위에 수치

지금은 지식인의 수난 시대다.

까만 것은 글자고, 흰 것은 종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니 어찌 부정을 긍정이라고 할 수 있겠나?

대학에서 논리학과 수학을 배우며 “A이면 B이고, B이면 A”라는 필요충분조건의 엄격함을 익혔던 이들이, 현실 정치 앞에서는 그 기초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논리학(Logic)의 기본은 명제 간의 참과 거짓을 따지는 일이다.

수학(Mathematics)의 정리와 정의 역시 필요충분조건 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이 엄정한 구조가 종종 흔들린다.

최근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재판 1심 선고는 많은 국민에게 논쟁적 장면으로 남았다.

판결은 결과를 선고하는 행위이지만, 그 정당성은 과정과 논리에 의해 완성된다. 사건의 발단과 원인, 맥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결과만 제시될 경우, 판결은 설득력을 잃기 쉽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발화 지점을 찾듯, 재판 역시 행위의 동기와 배경을 따지는 절차가 중요하다. 살인사건에서도 정당방위 여부를 검토하듯, 국가적 중대 사안 역시 그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따져 묻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법치는 정치와 분리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3권 분립은 권력을 나누기 위한 장치이지, 권력에 복속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만약 법이 정치 앞에서 먼저 눈치를 본다면, 법은 약자의 방패가 아니라 권력자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는 정치적 갈등의 누적도 자리한다.

윤 정부 시절의 탄핵 정국과 입법 갈등, 그리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공방은 이미 사회를 깊은 분열 상태로 몰아넣었다.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명확한 해명 요구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치가 법 위에 서는 순간, 국민은 상식을 잃는다.

상식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인간 판사 대신 AI 판사를 떠올리게 된다. 감정도, 눈치도 없이 오직 논리로만 판단해 줄 존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운영하는 제도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판결의 결과가 아니라 판결에 이르는 논리의 설득력이다.

법치 위에 정치가 서고, 정치 위에 눈치가 서며, 그 위에 수치가 쌓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법을 압도하는 사회는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회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단단한 논리와 절제된 권력이다.

법이 정치 앞에 눕지 않는 나라,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최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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