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2-23 03:39 수정일 : 2026-02-23 07:50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 대법원 로비에는 정의의 여신상"유스티티아(Justitia)"이 서 있다. 두 눈을 뜨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공정한 판결과 법치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묻고 싶다. 눈은 가려져 있고,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판사는 사사로운 이익이나 권력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이 질서 있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며, 그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다. 법이 흔들리면 국가는 기초부터 흔들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사법 영역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방대한 판례와 법조문을 분석하는 능력만 놓고 본다면, AI 판사가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일관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법리는 데이터와 논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적 맥락과 윤리,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판단은 여전히 인간 판사의 몫일 수밖에 없다.
법리는 AI가, 사회 윤리는 인간이. 사법의 미래는 그렇게 역할이 나뉠지도 모른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판사가 정치권력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무리 화려한 법전과 논리를 들이대도 국민은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건을 지연시키거나,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맞추는 식의 재판은 법치의 적이다. 판사는 법률 지식뿐 아니라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 12·3 비상계엄 사안을 두고 ‘내란’ 규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특검은 장기 집권 의도를 이유로 내란 혐의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과 법적 판단은 구분되어야 한다. 장기 집권 의도라는 추정이 형사 책임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리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형벌은 의혹이 아니라 증명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는 이해관계의 장이고, 법정은 증거와 법리의 공간이다. 이를 혼동하는 순간, 판결은 정치의 연장선으로 비쳐진다. 국민은 판사가 특정 진영의 논리나 카르텔에 기대어 판단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법 신뢰를 거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동기와 의도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판결은 냉정해야 한다. 인물의 배경이나 출신, 과거 이력보다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의 법적 책임이다.
판사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사익을 고려해 판결한다면, 그 순간 그는 법관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대리인이 된다. 법률을 어기고 판결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국가는 서서히 무너진다. 법치의 붕괴는 총성이 아니라 판결문에서 시작될 수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정의를 구현하는 마지막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는다. 판사는 과연 누구를 바라보고 판결하는가. 권력인가, 여론인가, 아니면 오직 법과 양심인가.
법정이 정치의 하청 기관이 되는 순간, 정의의 여신상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