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냐 통합 코스프레냐, 대전·충남 행정 통합의 민낯

[고무열 박사의 선구안]

작성일 : 2026-03-01 08:18 수정일 : 2026-03-01 10:32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고무열 (안전교육원 원장)
 

통합이냐 통합 코스프레냐, 대전·충남 행정 통합의 민낯

 

. 통합의 본질은 이름이 아닌 권한

행정 통합은 간판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권한을 나누고, 재정을 옮기고, 책임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논쟁의 핵심은 통합 찬반이 아니라 속 빈 통합여부다. 특별이라는 단어가 붙는다고 자치가 깊어지지 않는다. 자치는 재정권과 정책 결정권이 함께 이양될 때 비로소 실질이 된다.

 

중앙의 승인과 재량 아래 묶여 있는 구조라면 통합 이후에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름은 화려한데 권한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통합이 아니라 코스프레다. 제도의 본질은 명칭이 아니라 권력 구조에 있으며 조문 한 줄이 예산 수조 원보다 무겁다.

 

. 속도전 입법, 제도는 시제품이 아니다

통합은 선거 구호가 아니라 수십 년 지역 구조를 바꾸는 제도 개편이다. 산업 배치, 재정 배분, 공공기관 이전, 인구 이동, 교육·의료 체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 없이 정치 일정에 맞춘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일단 통과, 나중에 보완이라는 접근은 최소한 국가라는 설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법은 완성품이어야지 수정 예정 상품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최근의 입법 패턴은 속도와 수적 우위를 앞세운 일방 통과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회 다수 의석을 무기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성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당성의 빚을 남긴다. 절차가 흔들리면 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제도는 힘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합의로 세우는 것이다.

 

. 졸속 통합과 선거용 퍼포먼스 정치

더 심각한 문제는 통합 논의를 정책 설계가 아니라 정치 이벤트로 소비하는 태도다. 통합 법안의 핵심 조항이 충분히 공개·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단식투쟁과 같은 강경 퍼포먼스를 통해 통합 반대는 지역 발전 반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방식은 공론을 왜곡한다.

 

단식은 개인의 결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제도 설계의 빈틈을 가리기 위한 감정 동원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압박일 뿐이다. 정책의 완성도를 묻는 시민에게 왜 발전을 막느냐고 되묻는 것은 논점 회피다.

 

통합은 선거용 장면 연출의 배경이 아니다. 정치인이 굶는다고 법 조항이 정교해지지 않고 카메라가 켜졌다고 재정 구조가 투명해지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단식과 속전속결 입법이 결합하면 남는 것은 피로감과 불신뿐이다.

 

. 비교가 말해 주는 것, 내용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통합 논의는 강행 규정과 실질 특례 중심 설계를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통합안은 중앙 재량 여지를 폭넓게 남겨 두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같은 통합이라는 명칭 아래에서도 권한 구조와 재정 설계가 다르면 성격은 전혀 달라진다. 형식의 평등이 실질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통합의 성공 여부는 홍보 문구가 아니라 조문 설계가 결정한다. 미국은 주마다 법과 행정이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주가 우리보다 크고 넓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 해외가 준 교훈, 통합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다.

프랑스 파리의 메트로폴 뒤 그랑 파리(Métropole du Grand Paris)는 기능 통합을 단계적으로 확장했고,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의 통합 시도는 주민투표 부결 이후 강행을 멈췄다. 일본의 광역 합병 역시 효율성을 높였지만 지역 정체성 약화와 행정 접근성 저하라는 부작용을 남겼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통합은 이벤트가 아니라 설계이며 정당성은 절차에서 나온다.

 

. 20조의 유혹, 세금은 정치 자금이 아니다.

“20조 원 지원이라는 숫자는 강력한 유혹이지만, 그 돈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다. 통합을 조건으로 거액 지원을 약속하는 방식은 재정 철학이라기보다 정치적 유인이다. 통합하면 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제도의 설계 문제를 재정 보상 문제로 치환한다. 한마디로 우리 애기 울지마 사탕 줄게이다.

 

조건과 책임, 법적 보장이 없는 지원은 일회성 보조금에 불과하며 향후 통제 수단이 될 위험도 있다. 중앙이 돈줄을 쥐고 재량을 행사한다면 통합은 지방자치의 확대가 아니라 재정 의존의 심화가 될 수 있다. 액수의 크기가 제도의 빈약함을 덮어서는 안 된다.

 

. 덥석 받는 정치가 아니라 따져 묻는 정치

돈을 준다는데 왜 마다하느냐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위험하다. 정치는 구호에 반응하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를 따지는 책임이다. 덥석 기대고 넙죽 고개 숙이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종속이다.

 

통합의 핵심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와 자치 권한의 명문화다. 시민은 물어야 한다. 권한은 어디까지 이양되는가, 재정 특례는 강행 규정으로 명시되는가, 중앙의 재량은 어디까지 제한되는가, 실패했을 때 책임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 결론, 통합의 적은 반대가 아니라 졸속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숫자의 유혹에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제도의 완성도를 요구할 것인가다. 통합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달콤한 약속보다 단단한 조문을 요구하는 시민, 퍼포먼스보다 권한 구조를 따지는 국민이 될 때 통합은 자산이 된다.

 

졸속 입법과 선거용 단식은 통합을 대신할 수 없다. 카메라 앞의 결연한 표정이 아니라 법안 속의 치밀한 설계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통합은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이며 돈은 미끼가 아니라 책임이다.

 

구독자의 따뜻한 후원은 펜에 결기를 더하고,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냅니다.

(우체국: 312728-02-158902)

 

 

 

칼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