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 소년에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작성일 : 2026-03-06 10:47 수정일 : 2026-03-12 12:04
[대전 = 더뉴스라인] 계석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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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태 국회의원 크리스천파더스클럽 자문위원 |
기도로 단단해진 정치인, 장종태를 만나다
대전 정치권에는 ‘기도하는 정치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종태 국회의원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예배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찬양 인도를 맡으며 아버지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장 의원의 기도는 늘 진지하고 묵직했다.

최근 우연한 인연으로 차담 자리가 마련됐다. 지인 두 명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장 의원은 정치인 이전에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예배 후 교제 시간에 들었던 그의 말처럼 이날의 대화에서도 그의 언어는 여전히 긍정과 희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난을 딛고 국회까지"
신문배달 소년 장 의원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그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이후 대학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했고 행정대학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았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성실함과 현장 행정으로 인정받으며 지방자치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그는 민선 6·7기 대전 서구 구청장을 역임하며 지역 행정을 이끌었고, 이후 제22대 국회의원으로 중앙 정치 무대에 입성했다.
허허벌판에 핀 야생화 같은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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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태 국회의원 의원실 방문 인터뷰 좌측 시계 방향으로 The- 뉴스라인 강형기 문화부기자 계석일 사회부 기자 , 장종태 의원 이설영 편집 국장 |
"공천 배제와 정치적 시련"
정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한때 대전 시장 경선에 도전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공천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그는 다시 서구청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정치적으로는 뼈아픈 패배였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선거에서 패한 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지 않고, 사람의 계산만 따랐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는 그 시간을 ‘정치 인생의 내공을 다지는 시기’였다고 표현했다.
"기도로 버틴 시간"
장 의원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신앙이다. 그는 성경 구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자주 언급했다.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간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국민에게 밥값하는 정치”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장 의원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찡그린 얼굴을 보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늘 감사의 말을 먼저 꺼내는 습관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정치인의 역할을 이렇게 정리했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입니다. 큰 구호보다 국민에게 밥값하는 정치가 중요합니다.”
그의 말에는 화려한 수사 대신 생활 정치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
대기만성형 정치인의 다음 10년
장종태 의원은 스스로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정치인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전 지역에서 공직과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한 그는 이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허허벌판에서 피어난 야생화처럼 걸어온 정치 인생.
기도로 자신을 다져온 정치인 장종태의 앞으로 10년이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