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계상 칼럼니스트 (전) 양천고 교장 천주교평신도모임회장 |
김정은 핵 위협 앞에서도 “우리 탓”이라는 대통령
북한의 핵 위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발언 수위는 과거와 비교해도 매우 노골적이고 공격적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차 당 대회 보고에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며 “핵 공격을 받으면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 국민 전체를 겨냥한 핵 위협이다.
전쟁 중인 국가들조차 쉽게 하지 않는 수준의 극단적 발언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의 위협 자체보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북 모욕이나 위협 행위가 평화에 도움이 됐느냐”며 “대결과 전쟁으로 질주하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많은 국민에게 의문을 남긴다. 과연 누가 모욕하고 누가 위협하고 있는가.
핵무기를 들고 한국의 “완전 붕괴”를 말하는 쪽은 북한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시선은 오히려 우리 내부를 향하고 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출범 이후 취한 대북 정책들이다. 국정원의 대북 방송 중단, 군 확성기 철거, 한미 연합훈련 축소, 북핵 사실상 인정 가능성 시사 등 유화적 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정은은 오히려 이를 두고 “유화적 태도는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이렇게 강경해진 이유는 김정은의 발언 속에 드러난다. 그는 “한국 집권 세력이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 문화를 유포시켜 체제 붕괴를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체제 경쟁이다. 한국 사회의 자유와 번영, 그리고 한류 문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확산되면서 김씨 왕조 체제의 정당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한류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을 완전히 분리하려 한다. ‘남조선’ 대신 ‘한국’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남북을 외국처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언어 전략이다.
북·중 국경에 2중 철조망을 설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류 유입과 탈북을 막기 위해 북한 전체를 거대한 감옥처럼 봉쇄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강경 노선은 내부 체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그 원인을 마치 남측의 태도에서 찾는다면 문제의 본질을 거꾸로 보는 셈이 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북한을 자극하는 무모한 강경책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유화책도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분명한 원칙과 균형 잡힌 현실 인식이다. 핵 위협 앞에서조차 원인을 우리 내부에서만 찾는다면,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의 시선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국가 안보 앞에서만큼은 어떤 정치적 계산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