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금 민생지원금과 인플레이션

작성일 : 2026-04-03 05:46 수정일 : 2026-04-03 06:39 작성자 : 김상호 논설위원

 논설위원 김상호

 

정부가 고유가·고물가 상황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부담을 완화하고 전쟁 여파에 따른 경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26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유가 급등과 경기 둔화,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추경 편성 자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이번 민생 지원이 가뜩이나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을 더욱 키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 같은 예산 집행에는 지자체의 매칭(대응) 투자가 뒤따르게 되어 지방정부의 재정압박과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고유가로 인한 민생 부담 완화를 위해 편성한 재원은 총 48000억 원 규모다.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3256만 명을 포함해 차상위계층 36만 명, 기초생활수급자 285만 명 등이 지원 대상이다.

중동전쟁이 촉발한 3(고유가·고환율·고물가)로 인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민생을 감안하면 여당의 전쟁 추경속도전도 일리는 있다. 추경은 적기·적소에 이뤄져야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속도에만 방점을 찍은 졸속 추진은 곤란하다. 우선 26조원은 당초 거론됐던 추경 규모보다 5~10조원이나 많다. 현금성 지급 대상도 넓어졌다.최소한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무상 제공하는 '그냥드림센터'를 기존 150개소에서 300개소로 두 배 확대하고, 소상공인 대상 3000억 원 이상의 정책자금 추가공급 및 희망리턴패키지 지원 8000건 확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국비 4000억 원 투입 등도 이뤄진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대상인 하위 70%는 국민 10명 중 7명으로 사실상 보편적 현금 살포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위기 상황을 틈타 슬쩍 밀어넣은 선심성 사업 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매표용 추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규모 추경의 부작용도 따져야 한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를 활용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번 추경으로 올해 본예산은 지난해보다 11.8%나 늘어나게 된다. 초과 세수를 쟁여두거나 적자 국채 상환에 쓰는 대신 돈 풀기에 동원하면서 정부의 대응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금성 지원으로 물가 압력이 커지며 금리 상승을 자극할 여지도 다분하다. 이미 국채 금리가 오르며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7%를 돌파했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서민 가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민생지원금은 물가가 이미 치솟은 상황에서민생지원금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없다. 지자체들 역시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표정이다. 주민들에게 지원금이 지급되는 점은 반길 일이지만, 매칭 예산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민생지원금 역시 대부분의 재정사업과 마찬가지로 국비 80%, 지방비 20%의 매칭 구조로 설계돼 있다. 지자체 부담이 20%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열악한 지방재정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다. 이미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당시 전국 지자체들은 재정 부담에 허덕였다. 어느 사업을 줄일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추가 부담이 발생한 셈이다.

 

더구나 이후 세수 감소와 복지 지출 확대가 이어지면서 지자체 재정은 더욱 빠듯해졌다. 지자체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데도 일률적으로 20%를 분담하도록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부 시군은 재정 자립도가 아주 낮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자체별 재정 능력과 저소득층 비율에 따라 비용 분담 기준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부는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재정 능력에 따라 매칭 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등의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가오름세를 잡지 못하고 거시경제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추경을 통한 민생 지원 효과는 퇴색한다. 전례 없는 위기 대응을 위한 추경인 만큼 여야는 추경을 정쟁이나 선심의 도구로 삼기보다 꼼꼼한 심사를 통해 최대한의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추경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 발동까지 시사하며 강력한 위기 대응 의지를 밝혔지만, 오히려 시장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추경의 효과를 갉아먹을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발언과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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