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4-12 13:46 수정일 : 2026-04-12 16:36 작성자 :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국익을 위해 바위처럼 신중해야 할 대통령이 SNS를 통한 즉흥적 ‘말정치’로 대한민국을 또 하나의 외교 갈등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2023년 1월 아랍에미레이트(UAE)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연설을 하던 중 이란을 ‘UAE의 적(敵)’이라 표현해 외교부가 뒤집힌 적이 있다. UAE가 중동에서도 손에 꼽히는 우방이지만 역사·종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 내 역학 구도에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은 우리 외교의 오랜 문법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더불어 중동의 맹주이자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 부국(富國)이면서 과거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이란과 먼저 나서서 각을 세울 이유도 없었다. 이란이 “간섭하기 좋아한다”고 응수하면서 이 문제는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했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외교 참사’라 규정하며 “뜬금없이 이란을 겨냥해 적대적인 발언을 내놨다” “형제국 UAE를 난처하게 만들고 이란을 자극하는 매우 잘못된 실언(失言)”이라고 비판했었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소수 민족 탄압 등에 대해 유엔이 목소리를 낼 때 반대·기권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본인이 과거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한 일방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 항행(航行)의 자유 수호 문제가 걸려 있는 양안(兩岸) 갈등에 대해 ‘한국과 상관 없는 일’이란 취지로 얘기했었다
그런 그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제 정세가 심상찮은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SNS 발언이 심각한 외교적 파장을 낳고있다.이스라엘 외무부가 적대 국가에 사용해 온 ‘규탄(condemnation)’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양국은 1962년 수교 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는 통상 우호국 정상의 발언에 대해 사용하는 외교적 표현을 훌쩍 넘어서는 수위다. 외교가에서는 “대한민국과 수교 관계에 있는 국가가 한국 대통령을 향해 ‘unacceptable’과 ‘condemnation’이라는 표현을 동시에 사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condemnation’은 통상 적대국의 도발이나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를 규탄할 때 사용되는 최고 수위의 외교 용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한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넘어서 한미 관계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태로워 보이는 사안이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이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에 등장한 홀로코스트 관련 표현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한 뒤 건물에서 떨어뜨렸다’는 취지의 영상을 공유하며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었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사회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집단 정체성과 기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외교적으로는 사실상 ‘금기’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안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사건에 대해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한 작전 중 발생한 것이며, 당시 이스라엘 군인들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이고 긴박한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사건은 이미 2년 전에 철저한 조사와 조치를 거쳤다”고 했다. 또한 “이 대통령으로부터 최근 이란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시민을 상대로 감행한 공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했다. 그러면서 “글을 게시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상 조롱에 가까운 메시지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SNS 활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다. 국가 정상의 발언은 형식과 무관하게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현안에 대한 사전 검증과 정책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외교적 파장이 큰 사안을 개인 메시지처럼 처리할 경우 의도와 다른 해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한다더니 왜 갑자기 가치 외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북한 인권에는 완전히 입을 닫으면서 왜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마스의 이스라엘에대한 잔악한 테러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리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중동 전쟁 같은 최고난도 사태에 자연인이나 평론가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 시점에 직접 ‘개입’하는 듯 비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는 평지풍파로 문제를 키우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민생과 나라의 중대 과제들을 실용적으로 풀어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