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윤원갑의 백령도 기행
작성일 : 2026-04-15 12:20 수정일 : 2026-04-15 17:24 작성자 : 윤원갑 기자 (ywg0405@hanmail.net)
【대전=더뉴스라인】윤원갑 기자
『백령도 유일한 감리교의 백령감리교회』
-역사학자 윤원갑의 백령도 기행-

사곶 천연비행장은 썰물이 되면 단단하게 굳는 규조토 해변이 드러나 실제로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천연 활주로가 된다고 한다.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희귀지형으로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되어있다. 바다건너 보이는 저곳이 황해도 장산곳 마을이라고 하니 서로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산림감시원이라고 모자를 쓴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백령도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교회의 방향을 알려 주었다.
차는 백령도의 명동이라고 하는 마을을 지나면서 새로 지은 듯한 백령감리교회가 보였다. 이 지역 까나리 여행사 소속 관광버스 기사 김영태는 가는 길을 좀 꺼리는 것 같았다. 큰 차가 들어가기가 수월하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다음 날 사곶비행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에 다시 기사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알았다고 했으나 내키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행지 일정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인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나의 재촉에 결국 갈 수 있었다.

백령감리교회라고 쓴 예배당에 21명이 한꺼번에 웅성거리며 들어갔다. 십승지선교회 고문 윤석일 목사님이 제일 먼저 들어가 봉투에 헌금을 넣으면서 조용히 기도를 하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들어가다 보니 왼쪽 사무실에 어느 남자분이 있어 혹시 목사님이시냐? 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안내를 하였다.
교회 목사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윤목사님은 명함을 꺼내며 주는데 그 목사님은 윤석일 목사님 아니시냐? 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윤목사님은 충남 은진교회에서 선교사로 외국으로 파송예배를 드릴 때 격려사를 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도리어 웬일이냐? 고 반가움을 나타내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예배를 즉석으로 간단한 예배를 드리게 되으며, 황려 목사의 연주에 맞춰 십승지 주제가 1~3절을 재창했다.
이 후 김준기 협력목사님의 특별기도가 이어졌고, 33년 만에 정목사님은 다른 곳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생하시다가 백령도로 와서 하나님은 우리 십승지선교회를 만나보라고 하신 것 같다고 울먹이면서 말씀을 전했다.
헌금은 사전에 준비하지 못했지만 십승지 최승하 장로가 선교회의 이름으로 드렸고 일부 회원도 개인적으로 드렸으며, 이 후 목원대 부총장을 지낸 안승병 목사님이 축도를 하였다.



□ 교회 소개와 목회 여정
저는 백령감리교회 초대 목사로 파송을 받아 사역을 하고 있는 정재화 목사입니다. 1984년 구체적인 선교 사명을 받고 신학교를 졸업하자(1990) 마자 호주에 가서 훈련을 마치고 대만 선교사로 1993년 연무지방 은진교회에서 파송을 받았을 때 윤석일 목사님께서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994년 중국 티벳 땅 “청해성”에 들어가서 이슬람을 신봉하는 ‘회민’을 상대로 지하교회를 개척하고 사역을 하다가 2001년 중국 공안에 의해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티벳 지역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인도 파키스탄 분쟁지역인 “캐쉬미르” 지역에 들어가(2002) 새롭게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곳은 이슬람 안에 있는 두 종파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분쟁이 치열한 곳이라 늘 치안이 불안했고 수없이 계엄을 경험하다가 군인의 요청에 의해 외국인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는 이유로 추방(2012년)을 당해 다시 파키스탄 수도 외곽 지역 라왈핀디 지역으로 와서 슬럼가를 형성하고 오랫동안 살아온 파키스탄 기독교 교회 사역을 학교와 주일학교 사역을 중심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사역을 계속 하고 있는 중에 주님은 다시 저를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부흥을 경험하는 이란으로 부르셔서 이란 중부지역 “이스파한”으로 들어가게(2018) 되었고, 파키스탄에서 알게 된 이란 사역자 가정으로 인도되어 그들과 함께 6개월을 동거하며 복음을 전하면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선교사를 감시하고 복음 전도활동을 극도로 방해하는 정부에 의해 신분이 밝혀져 다시 파키스탄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약 2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치유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아있는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하지만 저희가 초창기 주님께 서원을 드린 기도가 있었습니다.“주님, 저희가 30년간 타 민족을 품고 전도하겠으니 마치고 나면 내 민족을 품고 특히 북한에 들어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했는데 해외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2024년) 주님께서 이곳 백령도 지역에 중부연회 차원에서 서해 5도에 감리교회가 없어 우선 백령도에 감리교 교회를 개척하는데 목회자 지망생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회도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던 저에게 북한 선교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하고 중부 연회 감독님과 여러분들과 인터뷰를 통해 이곳 백령도 감리교회 초대 담임자로 2025년 5월에 와서 2025년 10월 15일에 건축완공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이곳 백령도에 들어와 보니 섬 주민 5천명 및 군인 5천명이 있는데 이미 장로교 합동 측 교단 교회가 10개가 있었고, 100년이 넘는 교회도 5개나 되고 대부분 6.25이후에 개척된 교회들이었습니다. 또한 천주교는 초창기 김대건 신부의 활약으로 조선에 천주교 선교사들을 백령도에 오게 하였고 위장을 한 다음 다시 인천으로 들어가 조선에 천주교를 전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기에 이곳에 세워진 천주교 교회도 약 7개나 됩니다.
이 섬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섬’으로 공인을 받은 섬이고 북한 선교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매일 북의 땅 장산곶에서 불과 (12∼15km) 심청각에 올라가 북방선교의 선교지, 감리교회가 세워지게 하옵소서라고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일: 북한교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월: 우상 숭배의 견고한 진을 파하여 주옵소서.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지켜주옵소서수: 20만 명의 수용된 정치범 수용소가 무너지게 하옵소서.목: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게 하옵소서.금: 부족한 식량이 공급되게 하옵소서.토: 월북자들을 통해 북한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북한의 월래도와 황해도 장연군 일대가 보인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아픈 현실이다. 이상과 같이 짧게 보고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즉석 전도
관광버스를 운행하는 김영태 대리 (일명 까대리)
왼쪽에서 1번 김선숙원장. 2번 까나리여행사 김영태대리(까대리)
3번 강선임권사 4번 정재화목사 5번 류방열장로 6번 유병선장로
까대리는 강선임 권사의 권유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백령감리교회 첫 신자에 이어 최초 집사가 되기를 십승지선교회에서 기도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성장과 부흥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 좁은 섬마을에서 기존 장로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 들어오는 주민과 감리교 선교회 등에서 여행으로 방문하는 하는 분들에게 북한 선교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 기도하는 기도터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