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古都)는 많지만, 세계가 기억하는 도시는 드물다.
작성일 : 2026-04-24 11:08 수정일 : 2026-04-24 11:34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부여, 왜 아직 ‘경주’처럼 되지 못했는가
고도(古都)는 많지만, 세계가 기억하는 도시는 드물다.
그러나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는 이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을 넘어 세계인이 찾는 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반면 같은 고도인 부여는 여전히 ‘조용한 여행지’에 머물러 있다. 왜 이런 격차가 생겼을까.
두 도시의 차이는 단순히 역사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신라가 약 천 년의 수도를 유지한 반면, 백제의 사비시대는 120여 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차이는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경주는 역사 그 자체를 도시의 구조로 만들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핵심 유적이 도심 한가운데 살아 숨 쉬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여기에 보문관광단지라는 국가 주도의 인프라가 결합되며 ‘머무는 도시’로 진화했다.
반면 부여는 다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궁남지, 낙화암 등 역사적 가치 유적 하나하나는 빼어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 되지 못했다.
부여를 찾은 관광객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떠나는 ‘1일 코스’에 머문다. 머무르지 않으면 소비가 없고, 소비가 없으면 도시의 확장은 멈춘다.
경주는 유네스코라는 ‘세계 언어’를 일찍이 확보했다.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가 등재되며 국제적 브랜드를 구축했다. 이후 황리단길과 같은 트렌디한 공간이 더해지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했다.
결국 경주는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과거를 재해석하는 도시’가 된 미래형 문화 유적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여도 세계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미 세계가 인정한 자산이다. 그러나 문제는 활용이다. 유산이 ‘정적(靜的) 전시’에 머물러 있는 한, 역사문화유적지 관광은 확장되지 않는다.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세력이 부여에서 나왔을 정도로 고대 한국 사회의 토대가 된 한민족의 뿌리가 부여다.
사계절 아름답고 조용하다는 부여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지역사회 지도자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이제 방향은 분명하다. 부여는 경주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작고 깊은 도시’라는 정체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낮의 유적을 밤까지 확장하고, 관람을 체험으로 바꾸며, 점을 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백마강의 물길과 궁남지의 밤, 정림사지의 시간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때 비로소 ‘머무는 도시’가 된다.

관광은 결국 기억의 산업이다. 경주는 ‘화려한 기억’을 남기고, 부여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문제는 여운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운에 이야기와 체류, 그리고 경험을 더해야 한다.
부여, 아직 늦지 않았다. 무한한 경쟁력이 있는 숨어있는 문화유산의 보고다.백제의 세련미는 신라의 화려함과 다른 경쟁력이다. 또한 크기가 아니라 밀도이고, 유적의 수가 아니라 해석의 깊이다.
백마강 위에 달이 뜨는 밤, 그 풍경이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는 순간, 비로소 부여는 ‘또 하나의 경주’가 아니라 ‘유일한 부여’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