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황금’인 새벽을 공략하라!
작성일 : 2026-04-26 09:23 수정일 : 2026-04-26 09:3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19세」는 강릉 출신 작가 이순원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문학 책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한 소년의 열세 살에서 열아홉 살까지 삶의 기억을 담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19세」는 어른 세계로의 입사를 치러내기 위한 성장기의 열병을 다룬 통과 제의라고 할 수 있다.
「19세」는 전체적으로는 모험의 도정에서 나타나는 신화학적 근원 플롯인 분리(separation), 입문(initiation), 복귀(return)라는 전형적인 구성 원리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술자인 ‘나’는 강원도 두메 가난한 농가의 둘째 아들이다. 위로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는 형을 두고 있다. 산골 출신이라는 놀림에 기죽지 않으려고 국민학교 졸업식 때 문교부 장관상으로 받은 콘사이스 사전을 ‘폼나게’ 끼고 다닌다.
“문교부 장관 이름을 아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교과서 맨 뒤 판권란에 ‘문교부 장관 검정필’이라 적힌 것을 보고 “네. 검정필입니다.”라고 호기있게 외쳤다가 비웃음만 당하고 ‘검정필’이란 별명을 얻는다.
1년 뒤인 14살, 나는 고민에 빠진다. ‘거기’에 거웃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두렵기도 했던 나는 세 살 위의 같은 반 친구에게 ‘무려 1백 원어치’의 풀빵을 상담료로 낸 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진단’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15세, 나는 드디어 부모님 몰래 친구와 온종일 걸어 대관령 ‘말랑’[정상의 강원도 사투리]에 오른다. 놀랍게도 그 높은 산 위에는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는 그 밭에 완전히 매료된다.
나는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평소 말씀인 “대관령은 비산비야(非山非野)여.”를 실감한다. 고개만 들면 시커멓게 압도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대관령은 강릉의 소년들에게 동경과 궁금함의 대상이었다. 작가는 “그때 우리들은 경포대 앞바다 저 너머가 아니라 대관령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매일 대관령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꿈을 키워간 시절”이라고 말한다.
16세, 부모님과 대판 싸운 뒤 고집대로 상고에 진학한다. 빨리 은행에 취직해 돈을 모아 대관령 정상에 ‘빨간 지붕의 그림같은 집’을 짓고 밭을 가는 농부가 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왼손잡이인 나는 주산실력이 영 엉망이라 은행원의 꿈을 포기한 뒤 학교를 건너 뛰어 바로 농부가 되겠다며 가출을 감행한다.
17세, 어렵게 허락을 받아낸 나는 배추밭 5천 평과 감자밭 2천 평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어린 농군은 햇빛과 비 등 날씨의 천우신조로 대풍을 거둬 목돈을 쥔다. 일제 500㏄ 혼다 오토바이를 사서 ‘폼나게’ 몰고 다니고 유곽을 들락거리며 ‘어른연습’을 한다.

어른들도 내가 돈을 벌자 어른대접을 해준다. 그렇게 한동안 돈을 쓰고 다니며 정신없이 놀다, ‘빨간 지붕’과 친구 누이에 대한 짝사랑 등 소중했던 ‘꿈’을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 작품 「19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화자가 청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로서, 욕설을 동반한 청소년들의 입말체와 함께 자신의 일탈 행위를 다양한 에피소드로 익살스럽게 풀어놓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추억을 유쾌하게 담아내는 한편,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 속에서 발동하는 10대 시절의 치기어린 일화들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쓸쓸한 상처의 자리를 보듬는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 자료 참고)
「19세」의 주인공 ‘나’의 청소년기 일탈은 타의가 아니라, 오로지 자의에 의한 그 시절 격동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반면 나는 ‘19세’ 때 어찌 하였던가? 학교는 고사하고 여전히 빈곤한 편부와 먹고사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여하튼 19세 그 나이면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대입을 앞둔, 인생에서 가장 중차대한 시기다. 오죽했으면 ‘고3은 집안의 가장 어른 시절’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어떤 공식으로 통용될까.
한심했던 나는 공부의 세월과 시기를 모두 놓친 뒤 흡사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러다가 뒤늦게 ‘철이 들어’ 작년부터 주경야독의 광야를 걷고 있다. 오는 6월 27일이면 대망(?)의 3학년으로 진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력의 심각한 감퇴에 있다. 「19세」 때처럼 작심하고 암기하면 머릿속에 팍팍 꽂히던 시절은 진작 증발한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19세」의 주인공 ‘나’처럼 공부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대관령 고랭지 채소밭으로 달아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즘 읽고 있는 [강성태 66일 공부 법칙]을 보면 ‘아침 습관이 하루 전체를 좌우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 ‘주경야독’하지 말라, 아침에 이불이라도 개라,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난다 – 가 핵심 키워드다.
천만다행인 게 나는 지금도 새벽이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루의 황금’인 새벽에 더 세심한 공부를 연구할 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