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잔치,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다.
작성일 : 2026-04-26 18:46 수정일 : 2026-04-26 19:04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회갑(回甲)잔치,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다
회갑(回甲)은 육십갑자의 ‘갑(甲)’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 인간의 시간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상징적 지점, 그래서 예로부터 회갑은 단순한 생일이 아니라 삶의 완주를 축하하는 의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평균수명이 80~90세를 넘어선 시대, 회갑은 더 이상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오히려 중간 기착지에 가깝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젊은 세대, 이른바 MZ세대는 거창한 의례보다 일상 속 균형, 즉 ‘워라밸’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들에게 행복은 미래를 위해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려야 할 감정이다.
부모 세대는 달랐다. 젊을 때는 오로지 생계와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노후에야 비로소 여유를 누리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평생 일만 하다 자신의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자식 세대는 ‘나중’이 아닌 ‘지금’을 선택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칠순·팔순 잔치는 점점 간소해지고 있다. 건강이 따라주지 않는 고령의 부모에게 긴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잔치는 축복이라기보다 고역이 되기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몇몇 지인과 나누는 짧은 대화, 그 소소한 시간이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 55세 예비역 정훈장교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칠순도 안 하는 시대에 무슨 회갑이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회갑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음반을 내고, 사람을 초청하고, 무대를 꾸민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88세 노모를 모시며 늙음의 현실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 건강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가족력 역시 불안 요소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축하하기로 했다. 죽은 뒤 조문객을 부르기보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과 웃고 노래하며 기억을 남기겠다는 선택이다.
어쩌면 회갑잔치는 ‘해야 한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누구를 위해’ 하느냐다. 타인의 시선과 관습에 맞춘 형식적 잔치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념하고,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자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생은 길어졌지만,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한정돼 있다. 가슴이 뛸 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회갑잔치는 늦게 치르는 의무가 아니라, 가장 살아 있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해 의례를 치르는가, 아니면 나의 삶을 위해 시간을 쓰는가. 회갑잔치는 그 답을 묻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