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안 먹으면 일이 더 힘들어유”
작성일 : 2026-04-28 06:30 수정일 : 2026-04-28 12:5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는 양귀자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고등학교 ‘문학’에도 수록된 작품이다. 1980년대 부천 원미동(구로구 가리봉동을 가리키는 표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소외, 편견을 다룬다.
주인공은 목욕탕 수리 공사로 임 씨를 부르며 의심과 갈등을 겪고, 결국 임 씨의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간다’는 말의 의미를 통해 오해를 풀고 연민을 느끼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천 원미동에 이사 온 주인공은 목욕탕 수리를 맡기기 위해 연탄장수 겸 잡일을 하는 임 씨를 부르지만, 임 씨를 ‘대충 할 것 같다’며 의심한다.
임 씨는 성실하게 일을 마치고 공사비도 예상보다 적게 받지만, 술자리에서 임 씨가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간다”는 이유를 밝히며 주인공의 편견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임 씨의 이야기를 듣고 오해를 반성하며, 정직한 노동자와 소외된 이웃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로 변화한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톺아본다. ‘가리봉동’은 임 씨가 연탄값을 받기 위해 가는 곳(스웨터 공장 사장 등)으로, 1980년대 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노동자들이 겪는 구조적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비 오는 날’은 임 씨가 연탄 배달·막일을 쉬는 날로, 그 휴일을 이용해 떼인 돈을 받으러 가리봉동에 간다는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소시민의 의심과 오해가 얼마나 쉽게 생기고, 성실함이 그 속에서 어떻게 상처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198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 속에서 계층 간 격차와 노동자의 불안정한 삶을 통해 ‘가난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편견을 넘어 이웃을 이해하고 연대하려는 태도를 되새기게 한다.

얼마 전 보일러실에 물이 자꾸만 새서 기술자를 불렀다. 지은 지가 오래 된 누옥인 데다가 장마철이면 더 심해지는 누수에 골머리를 앓았던 터였다. 이윽고 기술자 아저씨가 왔다.
첫눈에 보기에도 수더분하고 법 없이도 사실 분다웠다. 커피를 타드린 뒤 “수리비는 얼마나 들까요?”부터 물었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는 작품의 집주인처럼 수리비가 많이 나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자 아저씨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우선 급한 대로 임시처방은 했슈. 그렇지만 다음에 또 물이 솟구치면 공사비 꽤나 들어갈 듯싶네유...”
예상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감동할 수밖에! 그런데... “아저씨는 일솜씨도 좋아 보이는데 술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그도 그럴 것이 벌건 대낮부터 술 냄새가 진동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말에 기술자 아저씨는 면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헤헤~ 일이 고되다 보니 술을 안 먹으면 일이 더 힘들어서유.”
순간, 나는 느낀 바가 있어 냉큼 손길(도와주거나 해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가속도를 보탰다. 술꾼답게 그동안 모아두었던(?) 소주는 물론 선물로 받은 고가의 위스키, 그도 모자라 숙취제거제까지 몽땅 싸잡아 종이봉투에 담았다.
“이게 다 뭐유?” “저는 이제 술 안 먹습니다. 그러니 아무 부담 갖지 마시고 이 거 다 갖다 잡수세요.” 차라리 감격스런 표정으로 돌변한 기술자 아저씨는 뒤도 안 돌아보곤 달아나듯 우리 집을 빠져나갔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술을 안 먹는다면 그에게 당신의 술을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