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치는 딸이 효녀인 까닭

건강한 부모가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작성일 : 2026-04-30 11:36 수정일 : 2026-04-30 22:1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 “칠십삼 년 만에 학교에 갔다.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해서 먹고 씻고, 옷을 입고 남편은 "잘 갔다 와." 나는 "수고하세요.” 느지막이 느끼는 행복. 선생님의 설명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도 갈 곳이 있다는 게 즐겁다.“ =

 

내가 주경야독으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202412월에 발간한 학교 문예집에 실린 즐거운 갈 곳이라는 글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인 분이 썼다. 모두 다 아는 상식이겠지만 갈 곳이 없는 인생처럼 처참한 게 또 없다.

 

실직자는 아침마다 무거운 몸이라도 이끌고 나갈 출근할 직장이 없고, 가정이 깨진 가장은 지친 하루의 끝을 의탁하며 마음까지 눕힐 집이 없다. 갈 곳이 없다는 상실감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사라진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소속감이 뿌리째 흔들리는 아픔이다.

 

따라서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은 배고픔이나 추위보다, '나를 기다리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라는 자각일지도 모른다. 소속된 곳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나만 툭 떨어져 나온 듯한 고립감을 강제한다.

 

또한 이는 목적지의 상실과 마찬가지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곧 '해야 할 일''지켜야 할 사람'을 잃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그 발걸음은 갈지자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 학교는 보릿고개세대들이 학생의 주를 이루고 있다. 참고로 보릿고개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아니하여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기근의 그 고달픈 시기를 보내는 것이 마치 가파른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보릿고개라고 부른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나도 뼈저리게 경험했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반에서 3분의 1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보릿고개 가난이 불러들인 필연적 후과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지 못한 대열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이후에도 간난신고의 가파른 삶은 당최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무심한 세월은 총알처럼 흘러 내 나이를 60대 할아버지로 이동시켰다.

 

작년에 평소 존경하는 모 교수님의 강력한 추천을 좇아 대전시립중학교에 입학했다. 막상 등교는 했지만,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기 일쑤였다. 아울러 솔직히 내 나이에 무슨 출세를 하자고 이제야 공부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무시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나보다 한참이나 연상인 급우들, 예컨대 누님형님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만학의 부스스한 의기소침에 열정을 불어넣는 풍구(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역할로 우뚝했다.

 

그렇게 공부를 한 덕분에 오는 6월 하순이면 대망의 3학년으로 진급한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중·고등학교 각각 2년제(13학기제) 단축 교육과정으로 운영된다. 또한 학비에서부터 교재비, 급식까지 모든 게 무료로 제공된다.

 

이처럼 참 감사한 까닭에 결석을 하거나 허투루 공부하는 건 도의적으로도 예의가 아니라는 게 우리 반 급우들의 이심전심이다. 어제는 등교했더니 바로 옆자리의 급우(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는 일(노인 일자리 참여)이 힘들어서 오늘은 결석할까 생각하고 퇴근해 누워있는데 딸한테서 전화가 왔지 뭐예요...” 그럼, 그 따님은 과연 엄마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 “엄마, 지금 뭐 해?” / “. 일 갔다 와서 피곤해 누워 있어. 몸살 기운도 있고 해서 오늘은 학교에 안 갔으면 하고.” / “그게 무슨 소리야? 공부는 중단이 없어야 된다고. 어서 빨리 학교에 가!” /

 

그것은 차라리 명령이었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 급우의 모습이 이 세상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초과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건강한 부모가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라는 어떤 상식이 회자되는 즈음이다. 위 글에서 소개한 즐거운 갈 곳의 내용처럼 학생은 학교에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

 

우리들 보릿고개 세대는 비록 많이 못 배웠지만 오늘날의 풍요를 만든 주역들을 길러낸 장본인들이다. 또한 "자식들만큼은 굶기지 않겠다!"라는 일념과 아울러 자식 교육만큼은 죽어라 뒷바라지했다.

 

그처럼 자녀를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에 충실했던 그 열정이 오늘날의 부유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상식이다. 부모에게 공부하라며 야단치는 자녀가 진정 효자다. 등교는 곧 건강과 동의어(同義語)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