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훈장 소고
작성일 : 2026-05-05 12:05 수정일 : 2026-05-05 17:4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칼럼니스트(columnist)라는 직업은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세상을 읽는 틀'을 제안하는 설계자로서의 자부심을 먹고 산다.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기록의 권위와 역사적 증언
칼럼니스트는 오늘의 사건을 내일의 역사로 남기는 기록자다. 훗날 누군가 이 시대를 돌아볼 때, 건조한 팩트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과 대중의 정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는 가장 생생한 증언이 바로 칼럼이다.
여기엔 복잡한 사회 현상을 명료한 논리로 관통해 낼 때 느끼는 지적 카타르시스와 시대의 거울이 교합한다. 아울러 자신이 쓴 글이 당대 여론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책임감 섞인 자부심도 섞여 있다.
2. 고독한 통찰과 '언어의 조탁'
모두가 소음에 휩쓸릴 때, 칼럼니스트는 홀로 침묵 속에서 사안의 본질을 파고든다. 쏟아지는 정보들 사이에서 '나만의 관점'을 길어 올리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결론이 독자의 무릎을 치게 만들 때 비할 데 없는 보람을 느낀다.
이런 까닭에 “칼럼니스트의 자부심은 원고지 칸을 채우는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이 독자의 머릿속에 던지는 질문의 무게에서 온다."라는 명언도 있는 것이다.

3.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용기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대중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아끼지 않는 비판적 지성이야말로 칼럼니스트의 정체성이다.
비난을 받을지언정,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확신이 들 때 그들의 자부심은 가장 견고해진다. 내 글이 정책을 바꾸거나,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폭제가 되었을 때의 성취감이란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의 카타르시스다.
결국 칼럼니스트의 자부심은 '나의 문장이 세상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날카로운 진실 한 조각이 가진 가치를 아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칼럼니스트인 것이다.
오늘 내가 칼럼니스트로 글을 싣고 있는 창간 36주년 [월간 청풍] 4.5월호를 받았다.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어 잡지가 되는 기쁨의 만족도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만 머물던 글자들이 종이 위로 옮겨져 '활자'가 되고, 그것이 묶여 한 권의 '잡지'로 탄생하는 순간의 만족도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작가에게 이 과정은 단순히 결과물을 받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사유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승인받는 의식과도 같다.

그 기쁨의 깊이는 무형의 생각이 유무형의 '물성'을 갖는 경이로움으로 집약된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추상적인 생각들이 종이의 질감, 잉크의 냄새, 그리고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실체로 변했을 때 느끼는 만족도는 압도적이다.
또한 디지털 데이터는 클릭 한 번으로 사라질 수 있지만, 잡지에 실린 글은 도서관 서가나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물리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이어 눈으로만 읽던 글을 손으로 넘기며 만지는 경험은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객관화된 아름다움 역시 만만치 않다. 잘 편집된 면면을 보며 "내 글이 이렇게나 근사했나?"라는 낯선 감동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덩달아 ‘잡지’라는 매체의 격조에 내 이름 석 자가 나란히 놓이는 것은, 그 매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참했다는 강력한 훈장까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끝으로, 내 글이 활자가 되어 타인의 마음속에 가 닿았을 때, 고독했던 집필의 시간은 비로소 완전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글을 쓰는 것이 산통이라면, 활자화된 잡지를 손에 쥐는 것은 아이의 첫울음을 듣는 것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