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선구안]
작성일 : 2026-05-06 09:40 수정일 : 2026-05-06 10:44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gmy8888@naver.com)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진정한 교육은 사라지고 위험관리만 남은 교정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 관련 검색을 하다가 놀라운 기사를 보았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초등학교 축구 금지'에 관련 김민석 총리에게 질문한 내용이 있어 탐색해 보니 경악할 일이 있었다.
금지가 먼저인 학교, 멈춰버린 운동장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가 학교로부터 방과 후 운동장 축구 금지 안내를 받았다. 이유는 안전사고 우려였다. 그러나 학부모의 질문은 “안전 대책을 보완할 생각은 없고 왜 금지부터 하나.”였다. 실제 전국 초등학교 6,189곳 중 312곳이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축구·야구 같은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사고와 민원 부담이 커지면서 학교는 해결보다 금지를 선택했다.
운동장은 아이들의 첫 사회다.
아이의 성장은 늘 안전지대 밖에서 이루어진다. 친구와 경쟁하며 이기고 지는 법을 배우고, 때로는 억울함을 견디며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축구 한 판에도 사회생활의 축소판이 담겨 있다. 규칙을 지키는 법, 협력하는 법, 갈등을 조정하는 법,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이 모두 거기 있다. 그런데 혹시 다칠까 봐, 혹시 소외될까 봐, 혹시 민원이 들어올까 봐 아예 금지해 버린다면 아이들은 무엇으로 사회를 배울 것인가.
PC방은 열리고 운동장은 닫힌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운동장보다 학원과 PC방에 더 익숙하다.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보다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런데 학교마저 운동장을 닫아버린다면 아이들의 신체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 성장의 기회도 사라진다. 운동장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니다. 공동체를 배우는 첫 번째 사회다.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삶의 기본기를 익힌다.
사고보다 무서운 책임 추궁 사회
문제는 사고 자체가 아니다. 사고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다. 아이가 넘어지면 “괜찮니?”보다 먼저 “누가 책임질 건데?”를 묻는 사회가 됐다. 성장 과정의 작은 상처마저 누군가의 과실로 규정하려 든다. 인생은 원래 부딪히며 배우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만 아이들을 무균실에 가두려 한다. 무균실에서는 다치지 않을지 몰라도, 사회라는 현실에서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위험 관리자인가?
더 심각한 것은 그 모든 책임이 교사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공을 차다 다치면 교사의 책임, 체험학습 중 사고가 나도 교사의 책임, 친구끼리 다퉈도 관리 책임을 묻는다. 이쯤 되면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위험관리 담당자다. 가르치는 일보다 사고 예방 문서 작성에 더 신경 써야 하는 현실에서 누가 적극적인 교육을 하겠는가.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은 ‘하지 않는 것’이다. 축구 금지, 체험학습 취소, 야외 활동 축소 교육은 점점 책상 위로만 올라간다.
무너진 스승의 권위, 커지는 교육의 위축
예전의 스승은 아이를 사회로 이끄는 길잡이였다. 지금의 스승은 서비스 제공자처럼 취급받는다. 교육적 판단보다 민원인의 감정이 우선이고, 교사의 권위보다 소비자의 권리가 앞선다.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신이 들어선다. 불신이 깊어질수록 교사는 소극적이 되고, 교육은 위축된다. 스승을 믿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책임과 성장의 균형이 필요하다.
물론 교사의 책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명백한 과실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까지 교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교육을 죽이고 사명감을 떨어뜨린다.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지 보험회사가 아니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며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축구공을 치운 자리, 책임 전가만 남는다.
아이들이 뛰지 않는 운동장은 조용할지 몰라도 건강하지 않다. 넘어질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은 일어서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금지하는 사회는 결국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넘어지면 책임자를 찾는 법부터 배우게 만드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