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내 인생 최고의 일탈] 출간을 앞두고
작성일 : 2026-05-08 06:19 수정일 : 2026-05-08 06:3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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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의 대표작 ‘벼 타작’ |
김홍도(金弘道)는 조선 후기의 풍속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이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는 그의 호 단원을 따온 이름이다. 그는 정조 시대 때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산수화, 풍속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였지만 인물화 및 신선도, 화조화, 불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회화를 구축한 화가이기도 했다. 주로 어명과 고관의 명, 양반의 청탁을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 화가로 우리에게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에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이런 까닭에 김홍도가 젖니를 갈 나이 때부터 강세황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화법(畵法)을 배웠다. 강세황(姜世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화가로 본관은 진주(晉州)다.
많은 사람이 그를 김홍도의 스승이자 조선 시대의 뛰어난 화가로만 알지만, 예조판서까지 지낸 문인이었다. 정조 때에는 천추부사로 북경에 갔을 때 많은 청나라 사람들이 강세황의 그림을 구하려 할 정도로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강세황은 다른 화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으며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사람의 그림을 평가하는 역할을 했다. 문인 출신이지만 글씨와 서화에 능해 한국화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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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를 발탁한 강세황 |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모두 강세황이 유행시켰고, 조선에 서양식 화법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圖畫署, 조선 시대에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성종 때 도화원을 고친 것이다.)에 ‘입궐’한 김홍도는 결국 정조의 눈에 띄어 출세의 발판을 닦는다.
정조는 김홍도보다 일곱 살이 어렸던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친구처럼 김홍도를 대했으며, 자신이 모두 볼 수 없는 민심을 속속들이 그림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홍도는 정조가 진정 성군이 될 것임을 간파했다.
‘정치인’일 적에는 안 그러다가 정작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나면 민심과 동떨어지는 행동으로 돌변했던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면면이 이와 대비되면서 새삼 두 사람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김홍도는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민화(民畫) ‘벼 타작’은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에도 나타나지만, 추수를 끝내고 벼 타작을 하는 당시의 민초들 모습이 명징하다. 그런데 양반은 백성들이 고생하며 일하는데도 곰방대를 피우며 막걸리까지 받아다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이 모습에서는 마치 서민은 집 한 칸조차 없거늘 소위 일부 부도덕한 고관대작들은 부동산투기에도 혈안이 되어 호의호식하면서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작금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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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 임금 |
아무튼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이 있다. 귀인을 만나면 귀인이 되는 거지만 하찮은 사람들만 만나면 하찮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는 곧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분을 쌓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자찬(自讚)하고픈 내용이 하나 있어 발설(發說)한다.
그동안 전국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공저(共著)로 [내 인생 최고의 00](이)라는 제호의 책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오는 6월 초에는 다시금 [내 인생 최고의 일탈]이 발간된다. 여기엔 물론 내 글도 수록되었다.
김홍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강세황 덕분이었다. 나는 아직 성공과는 인연이 없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 옆에 있으면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지 외에도 알찬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지를 덩달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하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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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월이면 ‘내 인생 최고의 일탈’이 출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