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병아리들의 든든함
작성일 : 2026-05-10 06:19 수정일 : 2026-05-10 07:2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 손자들의 학구열을 지피는 할아버지의 지혜
해마다 명절이면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아 우리를 맞이하던 할아버지의 손에는 늘 낡은 신문이나 한자 사전이 들려 있었다.
남들은 손주들이 오면 "용돈은 얼마나 줄까", "뭐 맛있는 걸 먹일까"를 먼저 고민한다지만, 우리 할아버지의 관심사는 조금 달랐다. 할아버지에게 손주들의 학업은 단순히 성적표의 숫자가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읽어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정적 속에 흐르는 엄격한 응원
할아버지의 교육열은 유별나거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대도시의 부모들처럼 학원 진도를 체크하거나 일타 강사를 수소문하는 법도 없으셨다. 대신 할아버지는 '분위기'를 만드셨다.
손주들이 방문하는 주말이면 거실의 TV는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돋보기를 고쳐 쓰시고 서예를 하시거나 책을 읽으셨다.
어린 마음에 뛰어놀고 싶다가도, 묵묵히 글을 써 내려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할아버지는 "공부해라"라는 백 마디 말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그것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학구적 공기'였다.
◇ 지식보다 지혜를 묻는 질문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으실 때도 결코 "시험 잘 봤니?"라고 묻지 않으셨다. 대신 그날 배운 원리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혹은 그 역사적 사건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에 대해 툭 던지듯 질문을 던지셨다.
"수학을 배우는 건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엉킨 실타래 같은 세상일을 논리적으로 풀기 위해서란다."
할아버지가 강조하신 학구열은 단순히 대학 입시를 향한 경주가 아니었다. 배움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끈기'를 강조하셨다.
어려운 한자 성어를 풀이해 주실 때도 그 글자가 담고 있는 철학을 함께 설명해 주시며, 지식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와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 성장이라는 이름의 가장 큰 유산
세월이 흘러 손주들이 대학에 가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할아버지는 비로소 당신의 관심을 조금씩 드러내셨다.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던 사촌 형에게 할아버지는 당신이 평생 써오신 일기장과 함께 짧은 편지를 건네셨다.
거기에는 '학문에는 끝이 없으며, 배움을 멈추는 순간 마음은 늙기 시작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남다른 관심은 결국 우리를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당장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새로운 지식을 마주할 때 가슴 설레는 법을 배운 것이다.
◇ 할아버지의 등불
지금도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가끔 할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당신의 눈에는 우리가 읽는 전공 서적이나 자격증 교재가 단순히 성공을 위한 도구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튼튼한 배이자, 어둠을 밝힐 등불이었으리라. 손주들의 뜨거운 학구열을 지켜보던 할아버지의 그 따뜻하고도 매서운 눈빛은 이제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할아버지가 심어준 그 배움의 씨앗은 우리 삶의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배우고 읽어가는 중이다.
어제 손자와 손녀가 총출동했다. 올해 나란히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병아리들이다. 모처럼 할아버지 집에 와서도 공부하는 모습의 학구열을 보면서 이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소원했다.
“예부터 ‘부전자전’이라고 했단다. 그러니 장차 너희들도 부디 엄마 아빠 닮아 서울대학교 갔으면 좋겠다. 그럼 자연스레 서울대 동문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