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어떤 카타르시스
작성일 : 2026-05-10 20:34 수정일 : 2026-05-10 21:5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상스러운 표현 뒤에 숨은 절망과 비애를 나타낸다. 한국어에서 ‘개’라는 동물과 그 명칭은 참 묘한 위치를 차지한다.
때로는 귀여움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은 대상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극대화할 때 쓰인다. 그중에서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라는 문장은 화자가 맞닥뜨린 상황이 상식의 궤도를 완전히 이탈했을 때 터져 나오는 비명이자,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날 선 항의다.
이 말은 단순히 기분이 나쁠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핵심은 ‘경우(境遇)’라는 단어에 있다. 본래 ‘경우’란 이치에 닿는 도리나 놓여 있는 형편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개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 상황은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우리는 보통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을 받고, 선의를 베풀면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산다. 그런데 현실은 종종 뒤통수를 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정당한 절차를 밟았음에도 부당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때, 우리는 이 문장을 뱉는다.
이때의 ‘개 같은 경우’는 내 상식의 체계가 무너져 내린 허탈함의 다른 표현이다. 또한 이 표현이 주로 사용되는 또 다른 지점은 ‘억울함’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나 타인의 이기심 때문에 나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인간은 극도의 무력감을 느낀다. 점잖은 말로는 도저히 이 감정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을 때, 비속어의 힘을 빌려 응축된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붕괴하는 자존감을 붙들려는 안간힘인 것이다.
더욱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문장은 더욱 자주 소환된다. 갑질 문화, 불공정한 경쟁,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적 사건들을 목격하며 대중은 입안에서 이 문장을 맴돌린다.
그렇지만 이 거친 표현 안에는 역설적으로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라는 말이 결코 고운 말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세련된 미사여구보다 이 투박하고 거친 한마디가 가슴 속 응어리를 더 시원하게 뚫어주기도 한다.
우리말의 어떤 카타르시스(catharsis)다. 그러니까 삶이 우리를 속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이 앞길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다.
"정말, 세상에 어떻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엄청 더웠던 오늘 낮, 지인의 농장에 갔다. 널찍한 밭에 ‘개 집’이 있었는데 개가 피할 곳이란 개의 발바닥조차 겨우 피할 수조차 어려운 매우 협소한 무늬만의 그늘뿐이었다.
그래서 든 생각. 그 개는 아마 이렇게 푸념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