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광고 후폭풍과 마오쩌둥 천안문 사태 데자뷔
작성일 : 2026-05-24 04:50 수정일 : 2026-05-24 08:2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honggyeonggeok404@gmail.com)

1976년의 ‘천안문 사건(天安門事件)’ 또는 ‘제2차 천안문 사태’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76년 4월 5일에 있었던 군중 반란이다.
문화 대혁명 이래 마오쩌둥 사상의 극좌적 절대화 풍조와 마오쩌둥 식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주자파(走資派)’ 비판 운동이 다시 일어나, 저우언라이 총리의 죽음을 추모하려던 중국 인민의 의지가 꺾이고, 다시 화궈펑을 수뇌로 하는 마오쩌둥 사상의 조류가 정치권에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 4월 4일 청명절에, 베이징의 인민들은 손에 화환과 플래카드를 들고 천안문 광장에 있는 인민영웅기념비를 향하여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인터내셔널가' 등을 부르며 시위 행진하였다.
저우언라이의 자필 비문이 새겨져 있는 기념비는 중국 인민들의 화환에 의해서 제단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당시 베이징시 당국과 관헌은 이 기념비에 바친 화환을 모두 철거하였고, 다음날인 5일 격노한 중국 군중들은 반란을 일으켜 건물과 자동차 등에 방화를 하는 등 일대 소요가 야기되었다.
플래카드에는 후에 ‘4인방’이라 하여 체포된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과 측근인 야오원위안 등을 비판하는 시가 게재되기도 함으로써 오랜 마오쩌둥 체제에 대한 반역 의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사건은 공안당국과 군에 의해 반혁명사건으로 철저히 탄압되었으며, 덩샤오핑에게 책임을 물어, 4월 7일 그의 모든 직무를 박탈함으로써 실각시켰다. 반면, 이 사건 뒤 화궈펑은 정식으로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그 해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10월에는 ‘베이징 정변’으로 사인방이 체포되는 등 격동의 시기를 체험하였다.
이 사건은 1976년 당시 화궈펑에 의해 반혁명 사건으로 규정됐으나, 1978년 11월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합법적인 시위였다고 평가를 뒤집었다. 중국 공산당은 그 뒤로 이 사건을 사인방에 반대하여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고, 문화 대혁명을 부정한 전국적인 군중 항의 시위이었다고 선전하였다.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사람으로, 대장정 과정에서 당권을 장악했다.
수십 명에 불과한 일개 게릴라 부대의 지도자였으나 중일전쟁 기간 중화민국과 일본군의 격전을 이용해 세력을 확장했고, 일본 제국의 패망 이후엔 수백만 대군을 거느린 장제스와의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중국 대륙을 손에 넣었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을 수립하고 초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선출되어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종신 집권했다.
최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스타벅스 광고 논란의 후폭풍을 목도하며, 기이한 데자뷔를 느낀다.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선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현장에서 문득 20세기 중국 마오쩌둥 치세의 잔혹한 그림자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화대혁명’과 그 연장선상에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렸던 권위주의적 폭력의 역사가, 오늘날 대한민국 디지털 공간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태를 보며 1989년의 ‘천안문 사태(유혈 진압)’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메커니즘은 마오쩌둥이 동원했던 ‘홍위병(紅衛兵)의 광기’에 가깝다.
당시 홍위병들은 ‘혁명’이라는 절대적 교조를 앞세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교사, 지식인, 심지어 부모까지 마녀사냥하고 숙청했다. 그 과정에서 이성은 마비되었고, 오직 맹목적인 적개심과 낙인찍기만 남았다.
이번 스타벅스 광고를 둘러싼 집단적 공분과 기업의 무조건적인 고개 숙이기는 바로 그 시절의 광장 정치를 연상시킨다. 특정 단어나 이미지, 맥락을 현미경 들이대듯 파헤쳐 ‘불순한 의도’를 찾아내고, 일단 표적이 설정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파멸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토론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는 사치다. 오직 ‘아군이냐, 적군이냐’라는 이분법적 칼날만 춤을 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해당 기업들의 태도다.
글로벌 거대 자본인 스타벅스마저 논란이 터지기 무섭게 납작 엎드렸다. 사과문의 자구 하나하나가 마치 문화대혁명 시절 지식인들이 강요받았던 ‘자아비판서’를 연상케 한다.
소비자의 권리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집단적 압박 앞에,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쉽게 무릎을 꿇는다. 이러한 무조건적 수용은 결과적으로 디지털 홍위병들에게 "우리의 폭력이 통한다"는 학습 효과만 심어줄 뿐이다.
마오쩌둥이 군중의 광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듯, 오늘날의 알고리즘과 일부 극단적 커뮤니티는 대중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세를 불린다.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영역은 점차 위축되고, 검열관을 자처하는 대중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 전체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과거 중국이 홍위병의 광기를 거치며 문화적·정신적 황무지로 전락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 숨 막히는 '검열과 사냥'의 문화를 방치한다면, 우리 역시 디지털판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스타벅스 사태가 남긴 후폭풍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성이 마비된 광장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잠식하는지 보여주는 위험한 경고등이다.
물론 스타벅스의 어처구니없었던 광고 파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어쨌든 사려 깊지 못한 광고 문안 하나로도 얼마든지 충신은 몰라도, 역적으로 매도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