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행정

Home > 정치·행정 > 중앙정치

비례 정치인 국민들이 제거해야

탐욕과 자비는 비례하지 않는다

작성일 : 2025.12.25 18:45 수정일 : 2025.12.25 20:4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양무제(梁武帝)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 소연(蕭衍,464~549)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서기 502년 4월 8일에 황제 자리에 올랐고, 2년 후에는 불교를 받들어 불법으로 세상을 교화하겠다고 선포하며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양무제는 재위 기간 동안 인재를 등용하고, 관제를 정비하며 세금을 낮춰서 무려 48년 동안 남조 최고의 번영기를 이끌었다. 또한 매사 절약하였고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황제보살(皇帝菩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문제였다. 양무제의 여섯 번째 동생 소굉은 탐욕스럽게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가 재물을 모아둔 창고는 거의 100칸에 이르렀으며 그 은에 넣어둔 돈만 당시에 3억여만 전(錢)에 달했다. 아울러 가난한 백성을 상대로 고리대금업까지 일삼으며 더욱 재산을 불려 나갔다.

 

이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직업마저 잃은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도 양무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백성들은 이후 벌어진 <후경의 난>을 크게 환영했다.

 

‘후경의 난’은 548년 후경(侯景)이 양나라 수도 건강(建康)을 함락시키고 무제를 폐위·사망케 한 반란으로, 남조 양나라의 사실상 멸망과 진(陳)의 성립을 불러온 사건이다.

 

‘후경의 난’은 548년에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장군이었던 후경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란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예병 800여 명으로 시작되었으나 강제 모병과 해방 노예, 양나라의 귀족제 모순 속에서 생계를 위협받던 농민들을 규합하여 곧 대군을 형성하였다.

 

이윽고 후경은 양의 수도인 건강으로 진격해 그곳을 포위하였고, 양 무제와 태자는 각지에 분봉되었던 종실의 왕들에게 근왕병을 요청하였으나 서로의 이득을 보고 견제를 한 결과 결국 다음 해 건강이 함락되고, 무제는 사로잡혀 죽게 된다.

 

건강을 장악한 후경은 간문제를 옹립했다가 551년에 간문제를 살해하고 예장왕 소동을 제위에 올린 뒤 선양을 받아 황제에 올라 건강에서 즉위했다. 그러나 간교했던 후경 또한 552년 후경은 도망 중에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이상은 [실업이 바꾼 세계사]의 한 대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물욕은 바다를 메꿔도 채울 수 없다. 또한 현대 정치사의 이면을 보더라도 과거와 도돌이표 행적과 궤까지 보이고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현역 정치인 중에도 물욕이 과한 자들이 부지기수임은 이런 주장을 방증하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탐욕(貪欲)과 자비(慈悲)는 결코 비례(比例)하지 않는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실을 계속하는 비례(非禮)의 정치인은 국민들이 제거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