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문제지조차 주지 않는다면
작성일 : 2026.06.04 04:22 수정일 : 2026.06.04 07:3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대한민국 헌정 사상 이토록 황당하고 유권자를 모독하는 사태가 있었던가?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이었던 어제,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해 유권자들의 혼란이 이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발을 동동 굴러야 했고, 일부는 끝내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일이 선관위의 무능과 나태로 인해 얼룩진 날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사태가 불거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첫 해명은 귀를 의심케 했다. 지난 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아서 용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투표율이 높으면 칭찬하고 독려해야 할 기관이, 도리어 유권자가 많이 찾아와 감당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게다가 특정 지역에서는 전체 유권자 수의 절반 정도만 투표용지를 인쇄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비용 절감인지 안일함인지 알 수 없으나, 유권자 전원이 투표에 참여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행정 편의주의적 예측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선관위의 이처럼 미흡하기 짝이 없는 일종의 ‘직무유기’는 마치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문제지조차 주지 않고 마냥 기다리라는 한심한 작태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선관위는 행정부나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그리고 막강한 ‘헌법기관’이다. 선거의 공정한 관리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헌법이 막강한 독립성과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관위의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임무는 단 한 명의 유권자가 찾아오더라도 차질 없이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투표지를 소쿠리와 종이상자에 담아 옮기던 부실 관리로 거센 질타를 받았던 그들이, 이번에는 아예 ‘투표용지’ 자체를 준비하지 않아 국민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돌아간 유권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벌써 정치권에서는 개표 중단과 선거 무효 소송, 재선거 논쟁으로 나라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수호해야 할 기관이 도리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원지가 된 셈이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투표율 예측 실패’라는 실무적 착오로 꼬리 자르기 해서는 안 된다. 헌법기관이라는 무거운 권위 뒤에 숨어 무책임한 행정을 반복해 온 고질적인 매너리즘의 결과다.
선관위는 대체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라는 국민의 뼈아픈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선관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