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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치'라는 권력의 감옥에 갇힌 대한민국 정치

'눈치'와 관련된 사자성어

작성일 : 2026.06.12 21:40 수정일 : 2026.06.13 08:3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선관위가 그동안 변명·무대응으로 일관한 데에는 선관위가 정당과 정치인에게 수사 기관이나 사법부보다 더한 갑(甲)인 존재이기 때문이란 말이 정치권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관위는 선거 범죄 혐의에 대한 자체 조사권이 있고, 고발이나 수사 의뢰도 할 수 있어 정치인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 개혁을 주장했던 한 전직 의원은 “내가 선관위 눈 밖에 나니, 날마다 우리 회계 직원에게 ‘유권자에게 밥을 안 사준 걸 직접 입증하라’는 식으로 압박했다”며 “선거 관리는 엉망이면서, 선거법·정치자금법 조사를 무기로 갑질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국회의원은 “정치인에겐 수사 기관이나 법원보다 더 두려운 게 선관위”라고 했다. 선관위 개혁 법안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늘 자 모 신문이 눈치에 대한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꼬집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보여준 무대응과 변명 일관의 태도 이면에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가장 고질적인 질병이 숨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의 지독한 ‘눈치 보기’다.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을 감시하는 선관위 앞에서는 약자(弱者)를 자처하며 숨을 죽인다.

 

조사권과 고발권을 쥔 기관에게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유권자에게 밥을 안 사준 것까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황당한 ‘갑질’을 당하면서도 속으로만 앓는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비겁한 풍경이다.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과 면책특권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 관리는 허술하게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무기로 군림하는 기관이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고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사정기관의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다칠까 봐, 다음 선거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눈앞의 부조리를 외면하는 사이 선관위 개혁 법안은 매번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맹자는 눈앞의 이익이나 두려움 때문에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자를 향해 준엄한 경고를 남겼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치를 보는가, 아니면 권력기관의 눈치를 보는가?

 

헌법기관의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선관위의 저항이 아니라, 고개를 숙인 채 주위를 살피는 정치인들의 비겁한 눈치다. 국민은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정치인을 원하지, 권력의 그늘에서 ‘눈치 게임’이나 벌이는 나약한 대리인을 원하지 않는다.

 

💡 '눈치'와 관련된 사자성어

 

 

위이시청(畏影惡迹)은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국을 싫어한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일에 겁을 먹고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는 미련한 행동을 비유한다. 선관위의 눈치만 보며 할 일을 못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향벽허조(向壁虛造)는 ‘벽을 향해 빈 것을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근거 없이 사실을 조작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밥을 안 사준 걸 직접 입증하라"며 무리하게 압박하는 기관의 갑질을 꼬집을 때 유용하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은 ‘말만 부드럽게 잘하고 보기 좋게 안색만 꾸민다’는 뜻이다. 국민 앞에서는 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사정기관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위선적인 정치인의 태도를 비판할 때 쓰인다.

 

당동벌이(黨同伐異)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다른 사람은 배척한다’는 뜻이다. 권력기관과 정치권이 묵시적인 카르텔을 형성해 개혁을 뭉개는 상황에 어울린다.

 

💡 '눈치'와 관련된 속담 및 격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나랴"는 원래는 환경이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떠나야 한다는 뜻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역으로 적용되어 "선관위 시스템이 싫어도 정치인이 힘이 없으니 무조건 엎드려 눈치를 봐야 한다"는 서글픈 종속 관계를 비꼬는 말로 인용될 수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에서 완벽하게 당당하지 못한 구석이 있는 정치인들이 많다 보니, 선관위가 칼을 빼들기도 전에 스스로 겁을 먹고 눈치를 보며 개혁을 주저하는 상황을 정곡으로 찌르는 속담이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는 눈치가 있으면 처신을 잘해 이득을 본다는 뜻이지만, 이를 부조리한 정치권에 대입하면 '소신 있게 개혁을 외치는 사람만 바보가 되고, 눈치 빠르게 납작 엎드린 정치인만 살아남는' 뒤틀린 생존 방식을 풍자하는 격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