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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치 임금으로 2박 3일 여행? 나는 못 가지!

수학여행 70만 원과 선관위의 복마전, 그 아득한 ‘여행의 괴리’

작성일 : 2026.07.01 06:11 수정일 : 2026.07.01 15:1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얼마 전 학교에서 ‘수학여행 참여자 조사’ 양식을 받았다. 종이 한 장에 담긴 안내 문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소는 제주도, 일정은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2박 3일.

 

그리고 눈길이 멈춘 곳은 ‘예상 경비: 70만 원’이라는 글자였다. 잠시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단박에 ‘불참’ 란에 굵게 체크를 마쳤다.

 

여행이라니. 그것도 학교에서 단체로 떠나는 수학여행이라니. 본래 여행이라는 장르는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빈궁한 서민의 삶에 70만 원짜리 제주도행 티켓은 몸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할 뿐이(었)다. 교통비와 최소한의 체류비로 책정된 그 70만 원은 나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달 동안 꼬박 땀 흘려 일해야 손에 쥐어지는 ‘노인 일자리 임금’의 전부다. 한 달 치 생계비를 사흘간의 풍류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이 이토록 엄혹할진대, 따라서 ‘불참’을 선택하는 데는 1초의 망설임도 사치였다.

 

나와 서민들의 삶에서 ‘여행’이라는 단어는 이렇듯 거대한 괴리를 남긴 채 멀어져 간다. 내가 마주한 서글픈 현실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언론 보도로 눈을 바꾸면,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세상의 풍향계가 매섭게 돌고 있다.

 

감사원이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대한 회계 검사 착수 방침을 밝혔다는 뉴스다.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의 방패 뒤에 숨어있던 선관위의 실상이 하나둘 베일을 벗는 모습을 보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보도된 세부 내용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선관위의 고위 공직자였던 자는 매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의문의 수당을 챙겼고, 재임 기간 중 수차례에 걸쳐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들이 ‘공무’라는 이름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국땅의 바람을 맞는 동안,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혈세로 충당되었다. 고위직이 길을 터주니 아래 직원들도 뒤질세라 앞다투어 국외 출장길에 올랐다.

 

최근 5년 동안 무려 461명의 직원이 107차례 해외로 나갔고, 여기에 투입된 국민의 세금만 24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외교 최일선도 아닌 선관위가 왜 그토록 빈번하게 국외를 넘나들어야 했는지, 복마전(伏魔殿)이라는 단어 외에는 이 기막힌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프고 선명한 ‘괴리’가 발생한다. 누군가는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해 번 임금 전부를 투입해야 하기에 수학여행조차 포기하며 쓴 눈물을 삼킨다. 반면, 누군가는 국민이 낸 세금을 주머니 쌈짓돈처럼 여기며 부부 동반으로, 혹은 출장을 빙자해 해외 유람을 떠난다.

 

국가가 허락한 공적 자금이 서민들의 삶을 보듬는 데는 인색하면서, 권력을 쥔 자들의 풍요로운 여가를 지원하는 데는 이토록 관대하단 말인가.

 

70만 원짜리 수학여행 조사서 앞에서조차 작아져야 했던 서민의 무력감과, 24억 원의 세금을 해외에 뿌린 선관위의 탐욕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오늘이다. 이 아득한 삶의 격차와 불공정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가장 부끄러운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