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언영색과 견벽청야
작성일 : 2026.09.20 05:17 수정일 : 2026.09.20 07:2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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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범 때 드러난 ‘견벽청야’ 모습, 이로 인해 프랑스군은 참패했다 |
예상했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가 결국 현실이 됐다. 김승원 후보자가 9월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사퇴했다. 지명된 지 불과 20일 만이다.
김 후보자는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뒤 사퇴를 결심했다며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사람의 낙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보는 눈의 문제이고, 검증은 그 눈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갈래로 불거졌다. 특히 과거 변호사 시절 사건 수임과 관련해 청문회에서 한 답변이 실제 확인된 사실과 배치된다는 보도가 나왔고, 후보자 측은 이를 기억에 의존한 착오라고 해명했다.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협동조합과 관련한 특혜 의혹도 고발로 이어졌으며, 후보자 측은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반박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9월 11일 김 후보자를 두고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잘된 인사”라고 평가하며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승원 후보자의 중도 낙마로 인해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머쓱해졌으며 야당은 "이 정도면 청와대 인사 라인부터 쫓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더욱 공세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교언영색(巧言令色)이었다. 『논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는 뜻으로, 흔히 남에게 잘 보이려고 말과 표정을 꾸미는 태도를 경계할 때 쓰인다.
물론 특정 정치인의 발언을 교언영색이라고 단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사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나 방어적 언사가 객관적인 검증보다 앞서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픈 것이다. 정치에서 말은 중요하지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또 하나의 고사성어인 견벽청야(堅壁淸野)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본래 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벽을 굳게 지키고 주변의 물자까지 치워 적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군사적 대응을 뜻한다.
*청야전술(淸野戰術)로도 불리는 이 말은 오늘날에는 외부의 공격에 맞서 내부를 단단히 방어한다는 의미로도 비유적으로 쓰인다. 인사 논란이 발생했을 때 조직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의혹을 차분하게 검증하고 잘못이 확인되면 과감하게 수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혹의 내용보다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 급급해 방어벽부터 높이는 것이다.
이번 김승원 후보자 사태에서 민주당이 청문보고서를 단독 채택하는 등 임명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이어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민주당은 청문회법에 따른 절차라고 맞섰다.
그러나 정치는 결국 국민의 눈높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내부의 방어벽을 높이고 우군을 결집해도 국민의 신뢰라는 문이 닫히면 인사는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법무부 장관은 법질서와 인권, 검찰과 교정, 출입국 등 국가의 핵심 사법행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런 만큼 후보자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도덕성, 해명 과정의 신뢰성, 각종 의혹에 대한 검증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청문회에서도 법무부 장관의 직무가 갖는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에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인사는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어야 한다. 측근이라고 감싸고, 같은 편이라고 믿어주는 순간 검증은 작동하기 어렵다.
교언영색이 경계해야 할 정치의 말이라면 견벽청야는 경계해야 할 정치의 방어 논리일 수 있다. 말로 국민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사실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외부의 비판을 막기 전에 내부의 허점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국민이다. 그러기에 좋은 인사는 처음부터 완벽한 인사라기보다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났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인사일 것이다.
이번 낙마를 단순히 한 후보자의 실패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벽을 아무리 높게 쌓아도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그 성벽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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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야전술(淸野戰術): 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러시아는 청야전술을 활용하여 나폴레옹 군을 패망으로 이끌었다.
청야전술은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로, 방어 측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초토화 전술의 일종이다.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때도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 영토 내에서 식량을 얻지 못하도록 주변의 먹을 것을 다 치워버리는 청야전술을 펼쳐 수나라 군대를 격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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