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기를
작성일 : 2026.05.30 04:29 수정일 : 2026.05.30 07:0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6.3 지방선거)의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5월 29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전투표소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가슴 한구석에선 익숙한 떨림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들어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걸음 속에는 언제나 엄숙한 염원이 담긴다. 내가 고심 끝에 선택한 후보가 부디 당선되기를, 그리하여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 지역과 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였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투표라는 신성한 권리와 의무를 저버린 적이 없다. 청년 시절의 서툰 첫 투표부터 백발이 성성해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거철만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낼 수 있는 가장 당당한 목소리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를 기꺼이 ‘자칭 민주시민’이라 부르며 나름의 자부심을 품고 살아왔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켜켜이 쌓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투표소를 나와 마주한 현실의 공기는 서늘하기만 하다. 야속하게도 이 나라는 내가, 그리고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기대하고 염원했던 대로만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저마다 화려한 청사진을 내밀며 서민을 위하고 균형 발전을 이루겠노라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투표함이 닫히고 나면 그 뜨겁던 약속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곤 했다.
저간의 실상은 참으로 팍팍하다. 우리 사회의 허리를 옥죄고 있는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다.
자산과 기회를 선점한 잘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쌓으며 더 높이 올라가는 반면, 당장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해야 하는 없는 사람들은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최소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믿음조차, 거대해진 양극화의 늪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져 내린다. 민생을 살리겠다던 정치는 정쟁에 매몰되어 있고, 정작 따스한 온기가 필요한 그늘진 곳에는 냉골 같은 소외감만 가득하다.
주권을 행사했다는 뿌듯함 뒤로 씁쓸한 질문이 꼬리를 문다. 투표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데, 왜 서민들의 삶은 매번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느껴질까?
자칭 ‘민주시민’으로서 걸어온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깊어지는 불평등의 골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고 심지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선거가 오면 또다시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
비록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정치가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고 해서 주권자의 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투표마저 저버린다면 세상은 더 빠르게 냉혹해질 것이며, 빈부의 격차는 손쓸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내가 던진 한 표는 비록 현실을 당장 천국으로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세상이 더 나쁜 방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는 브레이크는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투표장을 나서며 빌었던 그 작은 소망들, 빈부의 귀천 없이 누구나 인간다운 존엄을 누리는 세상에 대한 꿈을 나는 여전히 버릴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오늘의 서글픈 현실 앞에서는 한낱 공상(空想)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며 끝까지 붙잡아야 할 마지막 책임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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