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은 성과를 쌓아가는 데서 완성된다
작성일 : 2026.07.03 11:50 수정일 : 2026.07.03 12:0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7월 1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새 임기를 시작했다. 재선에 성공한 이들이야 기존 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겠지만, 새로 입성한 단체장들의 경우, 첫 행보부터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데 몰두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전임 시장의 구호를 바꾸고, 추진하던 사업의 이름을 갈아엎고, 심지어 시민의 세금으로 축적된 정책 성과마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곤 했다. 행정의 연속성보다 정치적 차별화가 앞섰던 것이다.
이런 풍경은 지방자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정책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후임 권력이 전임 권력의 흔적을 지우는 데 힘을 쏟고, 그 과정에서 정책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진영의 표적이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난 영화를 본 뒤 비전문가를 앞세워 탈원전을 밀어붙여 원전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준 역사가 바로 이런 주장의 뚜렷한 방증이다. 전임 대통령의 4대강 사업 역시 손을 댔음을 기억한다.
무엇이 국가와 국민에게 유익한가보다, 누가 시작했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행정은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권력의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국민이 떠안는다.
대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시장이 바뀌면 시정 홍보물의 표정도 바뀐다. 대전시가 매달 발행하는 간행물 「일류도시 대전」 역시 제호 변경 가능성이 짐작된다. 물론 이름 하나 바꾸는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호는 단순한 표지가 아니다. 시정 철학과 도시 브랜드를 상징하는 언어다. 그것이 시장 개인의 치적을 드러내는 장식물처럼 취급된다면, 결국 시민이 주인인 시정은 사라지고 권력자의 무대만 남는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전(大田)은 대전(臺前)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디 大田은 ‘큰 밭’이다. 넉넉히 품고 길러내는 공간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행정이 특정 정치인의 무대 앞, 곧 臺前으로 변해버리면 도시의 본질은 왜소해진다.
시민의 삶을 돌보는 행정은 뒤로 밀리고, 보여주기식 구호와 치적 경쟁만 전면에 선다. 도시가 시민의 터전이 아니라 권력 연출의 무대가 되는 순간이다.

또 하나의 말장난도 가능하다. 대전(大田)은 대전(大錢)일 수 있다. 물론 돈이 많다는 뜻만은 아니다. 도시의 정책과 사업 하나하나는 모두 시민의 세금으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전임자의 흔적을 지운답시고 멀쩡한 사업을 접고, 이름만 바꿔 새 사업처럼 포장하고, 홍보물과 슬로건을 전면 교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결국 시민의 몫이다. 정치적 자존심을 세우는 데 공공예산이 낭비된다면, 그 도시는 일류가 아니라 허영의 도시일 뿐이다.
진정 유능한 단체장은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전임자의 정책 가운데 쓸 것은 살리고 부족한 것은 고치는 사람이다.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혁신할 것은 혁신하는 데서 행정의 품격이 나온다.
새로움이란 무조건 이전 것을 부정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유산을 토대로 더 나은 방향을 여는 데서 나온다. 정치가 리셋(reset)의 기술이라면 행정은 축적의 기술이어야 한다.
시민이 바라는 것도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시장이 누구였든 도시가 더 편리해지고, 일자리가 늘고, 교통이 나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내용이 바뀌는 일이 먼저다. 표지의 문구보다 시민의 체감이 우선이다.
새 시장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새 시대란 전임자의 흔적을 없앤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대전이 정말 큰 밭, 곧 大田으로 남으려면 시민의 삶을 키우는 행정이 중심에 서야 한다.
어느 정치인의 무대 앞, 臺前이 아니라 시민의 도시여야 한다. 그리고 시민의 큰돈, 大錢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책임 있는 시정이 이어져야 한다.
도시의 품격은 흔적을 지우는 데서가 아니라, 성과를 쌓아가는 데서 완성된다.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