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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아닌 ‘쩐거(錢擧)’…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금권선거의 비극

민주주의와 '돈의 연극'의 간극

작성일 : 2026.08.24 06:32 수정일 : 2026.08.24 08:5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경북 안동농협 이사 선거를 둘러싼 무더기 금품 수수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후보와 대의원들이 커피숍과 강변, 심지어 밭두렁과 목욕탕 탈의실까지 전전하며 현금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밭두렁과 목욕탕을 은밀한 거래 장소로 삼았다니, 그 기묘함과 치밀함에 헛웃음마저 나온다. 이래서야 표를 던져 일꾼을 뽑는 ‘선거(選擧)’가 아니라, 돈을 던져 자리를 사고파는 ‘쩐거(錢擧)’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비열하고 은밀한 현금 거래는 과연 무엇을 증명하는가. 단언컨대, 이는 지역 공동체의 신뢰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근본부터 부식시키는 비극적인 현상이다.

 

첫째, 금권선거는 ‘대의’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매매 계약’으로 전락시킨다. 유권자가 가진 한 표는 신성한 권리이자 공동체의 미래를 맡기는 신뢰의 증표다.

 

그러나 이것이 현금 봉투와 교환되는 순간, 선거는 후보의 자질이나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많은 돈을 쥐여주는 자에게 권력을 넘기는' 하급 매매 시장으로 변질된다. 돈으로 표를 산 후보가 당선 후 조합원이나 주민을 위해 일할 리 만무하다.

 

둘째, 뇌물로 쟁취한 권력은 반드시 더 큰 부패와 수탈을 낳는다. 선거 과정에서 투자한 ‘비용’은 당선 후 어떠한 방식으로든 ‘회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금 유용, 이권 개입, 불투명한 사업 집행 등 온갖 부정부패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결국 그 피해는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대다수 조합원과 지역 주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셋째, 공동체 내의 도덕적 해이와 불신을 극대화한다. “남들도 다 돈 받고 찍는다”, “돈 안 쓰면 바보”라는 식의 왜곡된 인식이 확산되면, 정직하게 경쟁하려는 인재들은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심지어 밭두렁과 목욕탕 탈의실에서 교환된 것은 단순한 지폐 몇 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켜온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이자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었다.

 

농협은 농민의 피땀을 바탕으로 설립된 자조 조직이며, 풀뿌리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다. 그 리더를 뽑는 자리가 그야말로 ‘쩐의 전쟁터’로 변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 민주주의부터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수사 당국은 이번 안동농협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매표 행위는 단순한 도덕적 과오가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중범죄다.

 

엄정한 처벌과 함께,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랑하는 민주주의는 한낱 '돈의 연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선거와 관련 돈을 받은 대의원들에게는 형사 처벌과 별도로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한다. 과태료는 후보별로 받은 금액의 최대 50배(최대 3,000만 원)라고 하는데 일벌백계로 다시는 이런 추문이 재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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