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11-20 10:44 수정일 : 2023-11-20 13:42 작성자 : 이천석 기자 (cheonsuk@gmail.com)
오늘날 많은 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여 지방에는 인구소멸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과 200여년 전만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지금의 광역시와 옛적 대도시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조 13년인 1789년 호구총수가 발행되었는데 여기에는 호구수가 상세히 기록된바 그 내용을 살펴 살기 좋았던 지역을 비교해 보았다. 그 당시 대전광역시는 지명 자체가 없고 회덕군 및 진잠군으로 표시되어 1만 5천명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을 기준으로 차례대로 살펴본다.
17위: 순천시(당시 여수포함) 4만 6,330명
16위: 청주시 4만 7,046명
15위: 경기도 광주(당시 서울의 강남구, 강동구, 송파구 등을 포함) 5만 508명
14위: 안동시 5만 603명
13위: 밀양시 5만 901명
12위: 홍성군 5만 2,761명
11위: 성주군 5만 4,365명
10위: 수원시 5만 7,660명
9위: 나주시 5만 7,783명
8위: 양주시(당시 의정부, 동두천, 남양주 등을 포함) 6만 425명
7위: 대구시 6만 1,477명
6위: 진주시 6만 9,495명
5위: 상주시 7만 497명
4위: 경주시 7만 1,956명
3위: 전주시 7만 2,505명
2위: 충주시 8만 7,331명
1위: 서울 18만 9,153명
순위외에 부산광역시는 동래라는 지명으로 2만 8천명 정도로 아주 작은 중소도시에 불과하였고 인천광역시 또한 1만 4천여명에 불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