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 깨닫는 생명과 자비의 무게

“물 좀 주소!”

작성일 : 2026.08.06 07:12 수정일 : 2026.08.06 09:40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요즘엔 매일 고추에게 물을 준다

 

-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오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어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위에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중략)

 

목 마르요오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

 

1989년에 발매된 가수 한대수의 히트곡 [물 좀 주소]의 가사 중 일부이다. 한대수의 이 노래 ‘울부짖음’이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절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이 노랫말은 단순한 음률을 넘어, 지독한 폭염에 시달리는 이 땅 모든 생명체의 간절한 절규처럼 들려온다.

 

올여름 폭염은 참으로 잔혹하다. 땅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바짝 마르고, 강과 댐은 바닥을 드러내며, 바다마저 뜨겁게 달아올라 숨을 헐떡인다.

 

가공할 무더위 속에서 타들어 가는 논밭을 바라보는 농민의 심정, 뜨거운 축사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을 돌보는 축산인의 애타는 마음은 염장을 꼬챙이로 마구 찌르는 듯한 고통일 터다.

 

위에서든 아래서든, 시원한 물길이 축복처럼 툭~ 터져 나오길 바라는 마음은 이제 온 국민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다.

 

폭염과 물은 생존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숙명이다. 태양이 만물을 태울 듯이 작열할수록, 생명체는 내부의 수분을 더욱 간절히 열망한다. 물은 단순한 화학적 결합물이 아니다.

 

▶ 시원한 단비에 환호하는 농민들 모습을 AI 이미지로 생성

 

그것은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적시는 ‘사랑’이자, 시들어 가던 줄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명력’ 그 자체다. 물 한 모금이 들어가야 비로소 피가 돌고, 잎사귀가 펼쳐지며, 만물이 숨을 쉰다.

 

폭염이 인간과 자연의 생존 능력을 극한으로 시험할 때, 그 시험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백신은 다름 아닌 ‘물’이다.

 

나의 작은 방 창문 밖에도 이 폭염을 꿋꿋이 견뎌내는 작은 생명들이 있다. 지난봄, 대전역 근처 역전시장에서 소박한 마음으로 사 온 고추 모종 세 그루다.

 

작은 화분에 뿌리를 내린 녀석들은 계절의 흐름을 묵묵히 받아들이더니, 어느새 탐스럽고 잘 영근 고추를 수십 개나 선물해 주었다. 그 기특하고 어여쁜 모습이 고마워 요즘은 매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고추나무로 향한다.

 

차가운 물을 흙 위에 촉촉하게 나누어 줄 때, 화분 바닥으로 스며드는 물소리는 마치 고추나무가 내지르는 안도의 한숨 소리처럼 들린다.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일 때면, 녀석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방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한다.

 

그 순간, 나는 작은 화분 속에서 펼쳐지는 커다란 우주의 생명 순환을 본다. 사람이 정성껏 건넨 물 한 바가지가 식물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손길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이러한 ‘물 한 모금’이 절실한 순간들이 많다. 팍팍한 세상살이와 혹독한 인내를 요구하는 삶의 폭염 속에서,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성 어린 배려와 관심은 영혼을 적시는 시원한 생명수가 된다.

 

창가 너머 고추나무가 물 한 바가지에 방긋 웃어 보이듯, 우리 역시 작은 사랑과 관심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한다.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가사처럼, 지금 이 지독한 가뭄과 무더위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시원한 장대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타들어 가던 전국의 산천초목을 촉촉하게 적셔줄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오늘 아침에도 고추나무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며, 마음속으로 깊은 기도를 올려본다. 폭염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과 생명 위에도,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대자연의 자비로운 단비가 조속히 내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