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작성일 : 2024-01-26 21:33 수정일 : 2024-01-26 21:48 작성자 : 김응범 기자 (amen88@hanmail.net)

박범정  / 수필가

태평양 노무법인 대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다. 나는 초등학교를 5군데를 전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옥천에서 다니고 2학년2학기 때 대전으로 부모님 따라 이사 왔다. 아버지의 사업과 자녀의 교육 목적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고향인 시골 동네에서는 인물 소리를 들으신 분이었다. 충북의 명문 청주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단국대 법대를 나오셨다. 한때 고시공부를 하셨다. 아버지는 키가 180으로 크셨고 덩치도 좋으셨다. 청주고 시절 학생회장을 하셨다고 술 드시고 자랑삼아 얘기하신 적도 있다. 결국엔 고시도 사업도 실패하셨지만ᆢ어머니의 고향이 대전 유천동이라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대전으로 이사 왔다. 어머니는 딸 부잣집 셋째 딸이었고, 대전여고를 나오셨다.

외할아버지는 대전에서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천동 유지였다. 그 당시 지금은 둔산동으로 바뀐 대전 삼천동에서 큰 과수원을 운영하셨었다.나의 초등학교 시절 중안이 필자 대전에서 아버님이 집장사를 하셨는데 그 때문에 전학을 자주 다녔다. 70년대 중, 후반에는 건설경기가 아주 좋아서 집장사가 인기였다.

아버지께서는 건설 인부들을 몇 명을 데리고 집을 한 채 지으시면 새집에 우리가 들어가 몇 달 동안 살고 그동안 다른 집을 짓고, 새집이 팔리면 막 지은 다른 새집으로 이사 가는 방식이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이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이사를 초등학교 때만 7~8번을 한 것 같다.

 

옥천에 있는 화성국민학교를 시작으로 대전 삼천 국민학교, 문화 국민학교, 태평 국민학교를 거쳐 최종적으로 유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가장 오래 다닌 학교가 졸업한 유천 국민학교로 1년 반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 친구를 거의 사귈 수 없었다.

박범정 수필가 가족 / 태평양 노무법인 대표

 

내가 태어난 곳은 충북 옥천군 청성면 구음리라는 시골 동네였다. 100여 호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읍내에서 산을 하나 넘어야 갈 수 있는 시골마을이었다. 시골 동네에 전깃불이 1970년대쯤에 들어온 걸로 기억한다. 시골 동네까지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버스가 다녔다.초등학교는 시골집에서 산 하나 넘어 4k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청산 가기 전에 화성리에 학교가 있었다. 어릴 때는 꽤 먼 거리를 매일 동네 친구들과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화성 초등학교였는데 오래전에 폐교되었다.

 

국민학교 입학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아침에 평소에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이 부모님 손잡고 어디를 가는 것이었다. 나도 별생각 없이 친구들을 따라갔다. 가보니 초등학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던 것. 부모님도 없이 입학식에 온 나를 보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는 입학식 명단에도 없는데 어떻게 왔니?""친구 따라왔는데 저도 학교 다니고 싶어요.""그래? 그럼 내일 부모님을 모시고 오거라." 그래서 그다음 날 나도 학교 다니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라서 엉겁결에 입학을 했다. 사후 입학 승인을 받은 것. 그 당시는 그게 가능했다.

나는 그 당시 동네 친구들보다 한살이 어렸다. 친구들은 8살이었는데 나는 7살에 입학한 셈이다.내가 생일이 빠른 1월 말이라 가능했던 것. 1학년에 읍내 사는 친구가 반장을 했고 나는 부반장을 했다. 그 당시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라 우리 마을에는 티브이 있는 집이 없었다.

라디오가 고작이었다. 재밌는 드라마나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를 보려면 학교 근처 읍내에서 제법 잘 사는 반정하는 친구의 집에 모여 티브이를 시청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