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1-31 10:43 수정일 : 2024-01-31 10:49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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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범정 수필가,태평양 노무법인대표 |
나의 학창 시절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옥천에서 대전으로 이사 나왔다. 옥천 시골 촌놈이 도시인 대전으로 전학 온 것.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니던 학교를 5곳을 옮겨 다녔다. 모두 자의가 아니었다. 아버님이 그 당시 유행하던 소규모 건설업이라 할 수 있는 집 장사를 하셨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대전으로 이사 왔을 때는 삼천리(지금의 둔산동)에서 과수원을 하시던 외할아버지 집에서 반년 넘게 살았다. 더부살이를 한 셈이다.
외할아버지는 대전의 유천동 유지 소리를 들으실 정도로 부유하셨다. 유천동의 큰집에 사셨고, 삼천동에는 포도나무 과수원을 크게 경작하셔서 (지금은 사라진 삼천 국민학교 뒤편) 아침저녁으로 과수원으로 출퇴근하셨다. 과수원 말고도 삼천리에 경작하신 땅이 많았다. 과수원 옆에 방 세 칸의 집이었는데 두 칸은 이미 그 당시 보문고 선생님이셨던 셋째 외할아버지 가족들이 사셨다.
우리 집은 방 한 칸을 얻어 살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였지만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한 지붕에서 방 한 칸에 얹혀 산다고 생각해 보라. 그나마 옥천 촌구석에 시집가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딱하게 생각하신 외할아버지의 배려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불편한 생활은 6개월 후에 아버지께서 문화동에 땅을 사고 건설근로자 몇 분을 고용해서 첫 집을 지으셔서 새집으로 이사 가면서 청산될 수 있었다. 나는 삼천리 임시 거주지에 이사 가면서 살던 과수원 뒤편의 삼천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그 학교에서는 한 학기 남짓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니 별 추억이 없었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하나 있다.
어느 날인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학교 정문 앞에 누가 버린 쓰레기가 있길래 무심코 주워서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넣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을 지나가시던 교장선생님께서 우연히 보시고 나의 이름과 학년을 물어보셔서 무심코 대답했다.
그다음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전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인 아침조회 시간이었다.
조회에서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호명하시는 것이 아닌가. 단상에 오른 나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교생이 있는 앞에서 전날 쓰레기를 주운 선행 학생으로 칭찬을 받게 되었다. 어릴 때였지만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도 쓰레기를 절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사무실 복도에 떨어진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의 영향 탓인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초등학교 때 학교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3학년 때는 문화동에 위치한 문화 국민학교를 다녔다. 3학년 때도 부반장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살짝 작용한 것 같다. 3학년 때는 학교 공부를 그럭저럭 했지만 그림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처음 나갔던 미술대회에서 내 그림이 충남 어린이 미술 사생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미술대회에는 여러 차례 나갔는데 그때마다 연거푸 상을 받곤 했다. 담임 선생님도 내 그림 솜씨에 대해 종종 칭찬을 해 주셔서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미술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대전여고를 졸업하셨는데, 학교 다니실 때 전국 미술 경연 대회에서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신 적이 있을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나셨다. 그림을 특히 잘 그리셨고, 서예 글씨도 잘 쓰셨다. 노래도 잘 부르셔 서 동네방네 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받으신 적도 있다. 한마디로 예능인 끼가 많으셨다. 1남 3녀의 장남이었던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주위 친지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던 것 같다.
4학년 1학기 때는 아버지가 태평동에 집을 지으셨다. 그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근처에 있는 태평 국민학교로 전학 갔다. 5학년 2학기 무렵에는 도마동에 있는 유천 국민학교로 전학 가서 그곳에서 졸업을 했다. 유천 국민학교 때는 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던 시절이다. 그것은 글짓기였다.
어느 날인가 담임선생님이 요청하신 글지기 대회에 출품할 글을 원고에 써서 제출했다. 전국 어린이 글짓 기 대회에 출품할 글들을 학교에서 모으는 과정이었다.
내가 쓴 글을 담임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옆 반 여자 선생님이 우리 반에 잠시 오셨다. 담임선생님은 그 선생님 앞에서 내가 쓴 글을 보여주시며 이게 우리 반 학생이 쓴 글이라고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비록 글짓기 대회에서 큰 상은 못 받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도 글 쓰는 재능이 있음을 인식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